원로 서양화가 윤형근씨는 꾸밈을 싫어한다.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성격탓이다.

그는 한국모더니즘미술을 이끌어왔다.

국내는 물론 일본과 독일미술계에서도 알아주는 작가이기도 하다.

사회적으론 91,92년 경원대 총장을 지냈을 정도로 화려한 경력을 지녔지만
전시 팜플렛엔 출생(1928년,충북) 대학졸업(1957년,홍익대 미대) 외국체류
(1980~82년,파리)등 단 3줄만 적어넣었을 뿐이다.

말도 둘러대는 법이 없다.

언제나 직설적이고 바로 핵심으로 들어간다.

이런 성격은 작품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는 바탕에 직접 안료를 칠해가는 로 캔버스(raw canvas) 기법을 쓴다.

갈색 캔버스에 몇개의 굵은 선으로 구성된 극도로 단순한 그림.

세로로 그어진 그 선은 멀리서 보면 검은색 같지만 실은 암갈색과 군청색을
섞어 반복된 붓질로 얻어낸 그만의 색이다.

작가는 그 색을 "자연의 색"이라고 부른다.

초목이 썩어서 내는 색, 그리고 모든 자연이 죽어서 돌아가는 궁극의
색이다.

비슷한 그림을 반복해서 그린다는 화단 일부의 지적에 대해서도 그는
초연하다.

작품마다 색깔이 다르고 구도가 차이가 나는데 왜 같은 그림이냐는 것이다.

그는 그저 오랫동안 미술을 하다보니까 군더더기가 싫고 잔소리가 싫어서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됐다고 말한다.

서구의 미니멀리즘 영향을 받지 않았느냐는 물음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저 자연의 소박함과 근본적인 것을 끊임없이 추구하다 이른 종착점이라는
설명이다.

윤씨가 오는 17일부터 31일까지 서울 노화랑(732-3558)에서 작품전을
갖는다.

지난 96년 갤러리현대 전시회이후 3년만에 여는 개인전이다.

출품작은 20여점.

"작가의 표현욕구를 극도로 억제함으로써 가장 자연스럽게 그려진" 작품들
이다.

그리는 목적 자체를 작가 스스로 지워나감으로써 태어난 그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미술평론가 오광수씨는 "그의 작품은 소박하지만 늘 봐도 물리지 않고
새로운 느낌을 준다"고 평했다.

< 이정환 기자 jh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