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크린 가재의 겁먹은 표정, 초가의 가느다란 굴뚝 위로 피어오르는
저녁 연기...
현대인은 잊고 사는 게 많다.
아예 잃었는 지도 모른다.
두터운 먼지를 뒤집어 쓴 채 기억 한켠에 빼곡이 쌓여 있는 어린날의
흔적.
통기타가수 이성원(38)이 그 기억의 깊은 우물에 두레박을 드리웠다.
그리고는 유년의 싱그런 추억을 소담히 담아 올렸다.
그의 세번째 음반인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굿).
어른들을 위한 옛 동요집이다.
"겨울나무" "엄마야 누나야" "구두 발자국" "나뭇잎 배" "섬집아기"
"오빠생각" "모래성"을 차례로 노래해 담았다.
추곡초등학교 전교생이 풍금반주에 맞춰 부른 "따오기"1절과 2절로 이들
노래의 앞뒤를 포근히 감쌌다.
"추곡초등학교는 강원도 춘천과 양구 사이의 산깊은 곳에 있어요.
전교생이라야 스물 아홉명뿐인 미니학교이지요. 잠자고 있는 순수와 감성을
깨우는데엔 그 꼬맹이들의 맑은 목소리 만큼 좋을 게 없다 싶어 수록곡 앞
뒤에 넣었어요"
경남 진해를 터전으로 통기타 하나 메고 노래를 시작한 지 15년째.
그는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는 스타가 아니지만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을
서운해 한 적이 없는 자유인이다.
자신을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 그저 노래하는 것에 만족할 뿐이다.
의식적 판단이 배제된 평범하고 순수한 내용의 노래들이다.
같은 노래라도 장소와 분위기에 따라 가사는 물론 선율까지 즉흥적으로
바꿔 부르는 것을 즐긴다.
그래서인지 그의 목소리와 노래는 명상적이다.
편안함과 자유로움이 넘친다.
"같은 사람이 한 노래를 부르더라도 언제나 다를 수 밖에 없어요. 노래하는
사람과 듣는 이들 사이의 간격을 채우는 순간순간의 느낌과 공명이
중요하지요"
그는 노래하는 것 외에 한가지 어려운 숙제를 놓고 씨름을 하고 있다.
그건 우리의 전통음악에 현대의 옷을 입히는 일이다.
굿거리 중모리 휘모리 등 우리의 가락을 세계적으로 유행시키기 위한
작업이다.
"우리는 옛 것을 너무 많이 잊고 삽니다. 우리의 가락도 그런 것 중
하나죠. 그러나 우리의 가락은 세계적으로 유행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지요. 그 일을 누가 합니까. 바로 우리 스스로가 나서 해야하지
않을까요"
< 김재일 기자 kji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