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말 미국 영화계의 시선은 한 젊은 신인 남자감독에 쏠렸다.

당시 스물일곱이었던 캘리포니아 출신의 폴 토마스 앤더슨.

그에겐 "제2의 타란티노"란 극찬이 쏟아졌고 이듬해 아카데미
각본상.감독상 후보에 오른 것은 물론 각종 비평가상을 휩쓰는 영광을
누렸다.

그가 영화계에 발을 디딘지 두번째 찍어 내놓은 영화 "부기 나이트"
(Boogie Night)에 대한 찬사였다.

한국적 정서로 볼때 부기 나이트의 소재는 아무래도 좀 껄끄럽다.

미국 저급문화의 상징인 포르노산업의 적나라한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속에서 포르노물을 찍는 배우들의 행위는 그렇다 치더라도 33cm에
달하는 거대한 성기를 드러내는 마지막 장면은 특히 충격적이다.

그래서 국내에선 상영이 보류되어 왔다.

부기 나이트는 그러나 단순한 포르노물이 아니다.

감독은 시대변천에 따른 포르노산업의 흥망성쇠 속에 밑바닥 인생들의
희망과 좌절을 솜씨있게 그려낸다.

70년대의 끝자락.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나이트클럽에서 접시닦이를 하는 열일곱의 청년 에디
(마크 월버그)는 빅스타를 꿈꾼다.

거대한 성기가 그 꿈을 이룰 밑천이다.

포르노 영화감독 잭(버트 레이놀즈)이 이 "물건"을 놓칠리 없다.

잭의 제안을 받아들인 에디는 순식간에 포르노 업계의 스타로 떠오른다.

그러나 그의 행운은 오래가지 못한다.

절정후 사그라지는 그의 성기 처럼 또다시 밑바닥 인생으로 내리닫는다.

그의 물건이 더이상 말을 듣지 않는데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비디오가
영화를 대신하는 시대의 변화까지 겹친 것.

카메라는 시종일관 포르노 산업의 실태나 포르노 배우들의 행위에 대한
관객들의 호기심을 충족하기를 거부한다.

제3자의 입장에서 멀찍이 떨어져 바라볼 뿐이다.

그 초점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것은 인생유전이다.

보통사람들이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포르노의 세계에도 보통사람과
똑같은 삶이 있다는 메시지다.

감독은 섹스를 할 때도 절대 롤러스케이트를 벗지 않는 어린 포르노배우
롤러걸(헤더 그레이엄), 마약과 섹스에 중독됐지만 어머니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포르노스타 앰버(줄리안 무어), 포르노영화도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믿는 이상주의적 포르노 영화계의 대부 잭의 모습을 통해 이를 풀어낸다.

때와 장소, 그리고 상대를 가리지 않고 섹스를 해대는 부인으로 인해
권총자살하는 리틀빌(윌리엄 메이시)을 통해서도 그 세계 인간군상들의
고민과 좌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일 개봉.

< 김재일 기자 kji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