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 정부가 들어선후 각료들의 교체는 과거 정권때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사실상 출범 1년 동안 개각이라고 할 만한 인사는 단행되지 않았다.

다만 개인비리등으로 문제가 된 각료를 일부 교체한 정도다.

하지만 청와대 비서실의 경우는 과거보다 빈번한 교체를 하고 있다.

김정길 정무수석의 기용에서 보듯 청와대 수석의 교체에 따라 부처 장관이
보임되는 경우도 있었다.

김 대통령은 특히 청와대 정무수석과 정책기획수석을 각각 두번 바꿨다.

집권 1년만에 세번째 수석이 나온 것은 너무 잦은 교체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무수석과 함께 정책기획수석의 이같은 교체에 대해 세간에서는 첫 단추를
잘못끼운 데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김영삼 전대통령은 청와대에 입성하면서 주위의 거부반응에도 불구, 전병민
씨를 정책수석으로 기용한 뒤 "허위 학력"으로 곧바로 교체했었다.

뒤이어 학계출신을 주로 발탁했으나 수명이 길지 못했다.

대체적으로 역대 통치권자들은 다른 수석들은 대충 그렇다 치더라도
정책기획수석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고 교체도 잦았다는 지적이다.

역대 통치권자들이 정책기획수석을 자주 교체한 것은 당초 정책기획수석에
거는 기대가 컸었으나 중간에 "실망"한게 주된 이유다.

집권하면 국정의 마스터 플랜을 마련한다든가 정책조정업무를 맡길 측근
참모가 필요하다.

과거 노태우 전대통령이 명칭은 달랐지만 현재 자민련의 박철언 의원을
정책보좌관으로 옆에 둔거나 김영삼 전대통령이 "기획업무의 귀재"라는
전병민씨를 기용하려 했던 것으로 다 그러한 필요에서다.

통치권자들은 자신이 취약하거나 집권초기에 중점울 두고 추진해야할
분야에 자신이 볼때는 나름대로 적합한 인사를 기용했다.

하지만 같이 일을 하면서 역할이 기대에 못미쳤던 게 대부분이었다.

새정부 들어서도 김대중 대통령은 관료출신의 강봉균 현경제수석을 정책
수석에 기용했다가 불과 84일만에 김태동 전수석으로 전격 교체했다.

강 수석과 김 전수석의 업무 스타일상 맞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
했기 때문이다.

어떤면에서는 김 전수석이 경제수석 자리에 맞지 않아 교체하려다 보니
자리바꿈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이번 교체도 김 전수석이 학자출신이어서 개혁성은 살만하나 업무추진력과
홍보마인드가 부족한데 따른 부작용을 우려한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가 "김 대통령이 행정규제 50% 철페를 정부개혁의 최대 역점
사업으로 꼽았는데 홍보부족으로 "알맹이 없는 개혁"이라고 비판받았던 것을
두고 안타까워 했다"고 한 말은 김 전수석의 경질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정책기획수석의 업무가 대폭 조정되고 이에 적합한 신임 김한길
수석을 기용한 측면도 없진 않다.

김 대통령의 김한길 정책기획수석의 기용이 현 상황에서의 미봉책이 될지
"제대로 된"인사가 될지 여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 김수섭 기자 soosup@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