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의 부실화 문제가 거론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지난 25일
감사원이 발표한 농협 감사 결과는 그동안 말로만 나돌던 "총체적 부실
덩어리 농협"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감사결과를 보고받고 김대중 대통령이 격노한 이유를 알만하다.

97년 기준으로 회원조합의 92%가 결손을 보고 48%가 전액 자본잠식 상태로
나타났으며 그것도 대부분 분식결산으로 이를 은폐해왔다는 것이다. 또 농민
도시서민 등의 예금으로 조성한 돈을 대기업에 빌려주었거나 지급보증을 서
줬다가 무려 9천억원이상을 떼였고 연체된 적색 거래처에 새로 대출해준
것만도 1천72억원에 달한다니 농협이 그동안 얼마나 방만하게 운영돼왔는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같은 부실화 속에서도 직원들의 복리후생에는 씀씀이가
컸다는 점이다. 직무평가 결과와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인센티브상여금을 3백%
씩이나 지급했는가 하면 20여종의 각종 수당을 지급했다. 퇴직금도 후한
누진율에다 거액의 명예퇴직금을 얹어주어 어느 직원은 4억9천만원을 받은
일도 있다고 하니 도덕적 해이가 어느정도인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인 농협의 부실실태는 언제까지나 개탄만
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뒤늦긴 했지만 지금부터라도 근본적인 대수술을
서둘러야 한다. 단순한 감사로 그칠게 아니라 신용사업과 관련된 비리의혹에
대해서는 사정당국의 엄정한 조사가 있어야 한다. 또 농협이 금융기관 역할을
하면서도 금융감독위원회의 감독을 받지 않고 농림부 감독을 받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도 이번 기회에 철저하게 시정돼야 할 것이다.

아울러 농협 개혁은 조직의 축소와 인원감축 등 자체적인 구조조정에 그칠
게 아니라 부실면에서 농협과 별로 다를 게 없는 축협 및 수협 등 다른 생산
자단체와 통.폐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게 바람직하다. 중앙조직의 통.
폐합을 포함한 과감한 접근만이 단체도 살리고 생산자도 위하는 길이 될
것이다.

정부는 작년 봄부터 농협 축협 임협 인삼협 등 4개 협동조합중앙회의
통합을 포함한 개혁안을 마련하려 했으나 관련 단체들의 반발이 심해 단일안
을 마련하지 못한채 각 중앙회안과 정부의견을 국회에 제출해놓은 상태로
눈치만 보고 있다. 정부는 올 봄중으로 개혁안을 확정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국회 일정이 유동적인데다 일부 협동조합의 조직적 반대로 통합작업은 더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

농협을 비롯한 생산자단체의 개혁은 기회있을 때마다 그 필요성이 제기돼
왔고 무성한 논의가 있었으나 이룬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경제개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생산자단체들의 비효율과 비능률에 칼을 댈 절호의 기회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