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외국기업의 합작법인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적응하는 한국경제의
축소판과도 같다.

한국과 외국측 파트너는 거의 매일 의견이 상충하는 상황에 부딪치고
서로를 설득하고 양보해 합의에 이른다.

언어와 습관 문화 그리고 기업의 가치관에 내재하는 다양한 차이는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이것을 이해하고 감싸안으면서 성숙된 동반자관계를 이루게
된다.

한국경제신문은 외국인 좌담회시리즈 18번째로 한국과 외국 합작법인의
외국측 경영자들을 만나 이들의 경험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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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석자 : 크레이그 로저스 < LG-EDS 부사장 >
마이클 고틀러 < 한독약품 이사
(한국 훽스트마리온룻셀 부사장) >
전성철 < 경제평론가.미국변호사 / 사회 > ]

[ 외국인경영자가 본 한국기업문화 ]

<> 사회 =한국업체와 합작기업에서 일하면서 경영 측면의 장점과 힘든 점을
꼽는다면.

<> 로저스 부사장 =LG-EDS는 EDS가 전세계적으로 운영하는 합작법인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곳중 하나다.

시장점유율이 높고 이윤을 내고 있으며 고정고객도 많다.

합작법인 경영은 쉽지 않다.

국적이 다른 업체가 합작할 경우 언어장벽과 함께 기업문화의 차이가 존재
한다.

또 중요한 결정은 양측의 합의에 따라 이뤄지므로 시간이 적지않게 걸린다.

<> 고틀러 부사장 =합작경영은 마치 결혼과도 같다.

책임감을 갖고 관계를 지속하고 좋은 결실을 얻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한국에 있는 외국계 제약업체 가운데 상당히 성공한 케이스다.

한독약품은 다른 아시아국가에 제품을 공급하는 공급기지 역할도 한다.

어느 한쪽이 자기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조화시키려 노력한 결과다.

<> 사회 =한국기업과 외국기업 조직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 고틀러 부사장 =한국에서는 기업 업무가 공식조직보다는 비공식적
네트워크, 더 나아가 개인관계에 의해 좌우된다.

이것은 독일, 그리고 일본기업과도 다르다.

일본에도 비공식적 네트워크가 있지만 그 힘은 한국보다는 약하다.

한국의 비공식적 네트워크에는 외부인이 쉽게 들어가기 어렵다.

한국에 왔을 때 다른 외국인으로부터 "한국인이 당신을 아는데 1년,
받아들이는데 2년, 함께 일을 하는데는 3년이 걸린다"는 말을 들었다.

일리가 있는 얘기였다.

<> 사회 =한.미 기업문화의 가장 큰 차이는 위계질서와 평등 가운데 어느쪽
을 더 중시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 미국 로펌에서 근무할 때 비서가 내 성을 빼고 이름(퍼스트네임)만
부르는 것을 듣고 거의 경악한 적이 있다.

거기에 적응하는데 3년이 걸렸다.

<> 로저스 부사장 =나는 정반대 경험을 했다.

내 여비서는 늘 내 뒤를 따라 걸었다.

레이디퍼스트가 몸에 밴 문화속에 살아온 터라 여성을 뒤에 세우고 걷는
일은 불편했다.

나는 이것이 위계질서라기보다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이 한국 비즈니스에서 가장 낙후된 부분이다.

외국회사가 한국업체에 대해 가장 경쟁력을 갖춘 대목은 우수한 여성인력을
많이 확보했다는 것이다.

처음 중역의 비서진을 채용하는 면접장에 들어가서 나는 그녀들의 직업
숙련도 등을 물었는데 한국인 중역들은 결혼여부 남자친구는 있는지 등을
물었다.

미국에서 그런 질문을 하면 고소당했을 것이다.

지금 LG-EDS는 여성을 보다 평등하게 대우하려 애쓰고 있어 다행스럽다.

<> 고틀러 부사장 =한국기업에서는 위계와 권위를 중시하는 반면 유럽과
미국문화에서는 퍼스트네임을 부른다고 상사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권위는 그런 것보다는 규정 기구 책임에서 나온다.

한국에 오기 전 일본에 몇년간 있었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이 비슷하리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표면적 유사성과 달리 한국과 일본은 매우 달랐다.

한국인은 결정이 빠르고 위기관리에 능하다.

이번 경제위기 극복에서 이 점이 잘 드러났다.

강하고 저력있는 가족경영식의 중간규모 기업이 많다는 점에서 한국은
독일과 비슷하다.

<> 사회 =업무상 가장 어려운 점을 한가지 든다면.

<> 로저스 부사장 =합작기업이기 때문에 변화를 모색할 때 합의도출이
쉽지 않다.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 점을 해결하기 위해 자주 대화하려 애쓴다.

점심이나 저녁식사를 함께하는등 비공식적 모임을 중시한다.

밤늦게까지 함께 술마시는 일은 비용 지출도 큰데 비해 꼭 필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 사회 =의사소통 문제는 어떤가.

<> 로저스 부사장 =한국말을 배우려고 노력하지만 의사소통은 하지 못한다.

업무시간 내내 통역이 함께 있다.

EDS의 경우 한국은 영어사용이 매우 불편한 경우에 속한다.

1백% 투자법인이 아니라 현지업체와 합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EDS재팬에서는 영어로 얘기한다.

LG-EDS 직원 대부분은 LG 출신으로 이들은 영어구사력보다는 직업적 숙련도
가 중시되는 풍토에서 입사하고 일해 왔다.

반면 합작법인 출범후 여기서 채용한 사람들은 영어를 잘한다.

<> 고틀러 부사장 =우리 직원들은 영어를 상당히 잘한다.

한국인들의 평균 영어수준은 일본보다 크게 높다.

하지만 나는 영어보다는 직업적 숙련도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 사회 =아시아적 가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 로저스 부사장 =연장자를 공경하고 충성심이 큰 것등은 한국인이 갖고
있는 힘중의 하나다.

그토록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도 이런 가치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 매우
놀랍다.

<> 고틀러 부사장 =한국에는 유교사상등 서구와는 다른 가치체계가 있다.

하지만 일상적 기반에서는 문화의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다.

한국 기업인과 프랑스 기업인 사이의 차이보다는 한국 기업인과 한국
택시운전사 사이의 차이가 더 크다.

<> 사회 =투명성부족,지나친 규제등 아시아적 가치가 위기를 부르는데
한몫 했다는 의견이 있다.

아시아국가들은 집단을 중시하는 가치관 덕에 일정 수준까지는 올라갔지만
다음 단계로 도약하는 마당에서 무너졌다는 것이다.

<> 고틀러 부사장 =유럽에서도 이탈리아 같은 나라는 집단을 매우 중시한다.

집단위주의 사고방식에 문제는 있지만 위기 발생때는 집단의 결속력으로
문제를 잘 해결해 낸다.

<> 사회 =한국직원들의 장단점을 꼽는다면.

<> 고틀러 부사장 =일본인보다도 더 열심히 일한다.

직원들의 교육수준과 직업숙련도가 매우 높고 의견을 물으면 명확하게
표현할 줄도 안다.

<> 로저스 부사장 =인내심이 뛰어나다.

결코 "노"라고 말하지 않고 중단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끔은 융통성이 부족할 때도 있다.

<> 사회 =한국경제의 현 상황과 미래를 전망한다면.

<> 로저스 부사장 =매우 낙관적이다.

한국경제는 지금 국제경제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인정받아가고 있다.

<> 고틀러 부사장 =한국은 위기에 잘 대처했다.

최근 국가 신용등급도 올라갔다.

상당히 안정되고 성숙된 사회상도 깊은 인상을 줬다.

< 정리=조정애 기자 jcho@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