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두 < 전경련 상근부회장 >

취리히로부터 1백60km 떨어진 스위스 다보스는 29년만에 내린 최대 폭설로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세계적 석학, 정치지도자, 기업인들
이 이곳에 몰려들면서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21세기 인류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대규모 국제회의
가 이곳에서 개최되기 때문이었다.

이번 WEF(World Economic Forum) 연차총회는 "책임있는 세계성(Responsible
Globality)"을 주제로 지난 수년간 전세계적으로 추진되어온 개방화 국제화
의 문제점들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향에 대한 열띤 논의가 벌어졌다.

특히 이번 회의에서는 "세계성"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주최측은 세계화가 이제 하나의 흐름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를 조망하는
하나의 완성된 실체로 보아야 한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슈밥 WEF 회장은 개막연설에서 다수의 이익이 되는 세계화의 전개를 주장
했다.

그는 특히 완성단계에 도달한 세계화가 기술과 경제일변도로 이해되는 것을
경고하면서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마음이 오가는 시장경제를 주창
하였다.

아울러 관세인하,시장개방 등 실물부문의 국제화에 따른 생산성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국제금융불안이 상존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이와 관련,윌리암 로드 시티코프 부회장 등 금융계 인사들은 국제금융불안의
원인이 되는 비생산적 자금에 대해 일정한 통제가 가해져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했으나, 이를 감독하기 위한 국제금융기관의 설립은 개별국의 주권과도
연계되므로 보다 신중히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크레티앙 캐나다 수상 등 국가정상들은 지역경제와 세계경제간의 관계에
있어 국제화의 진행에도 불구하고 지역별 빈부차가 해소되지 않고 세계경제
성장의 혜택이 일부지역에 집중되고 있는 점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가 시급히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동구권 및 아프리카 정상들은 인류의 공동번영이라는 차원에서 선진국
이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지역별 성장격차 해소를 위하여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경영과 기술분야의 국제화도 큰 주제의 하나였다.

루이스 플래트 휴렛팩커드 회장과 블룸버그사의 마이클 블룸버그회장 등은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이 기업경영을 세계적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한편,
전자상거래가 유통혁명을 주도하면서 생산과 소비의 최적 효율성이 달성될
것으로 전망했다.

아울러 유전공학이 기업의 새로운 유망산업분야로 떠오르면서 기업윤리와
어떻게 조화시켜 나가느냐가 국제성의 시대에 보완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로
대두됐다고 밝혔다.

한편 기업인으로 기업경영 환경의 변화에 관한 논의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다보스 회의에서 많은 참석자들이 공감한 것은 급속히 진행되는
기업활동의 국제화, 생산기반의 지식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재 한창 진행중인 우리나라 사업구조조정 역시 이러한 미래의 경영환경을
염두에 두고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이 점은 정부가 경제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에서도 꼭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으로 보인다.

우리 한국 대표단은 이번 WEF 연차총회에 세계의 수많은 정치.경제계의
지도자들이 모인다는 점을 감안, 한국경제설명회를 별도로 개최했다.

사실 그간 해외언론들은 한국의 구조조정을 부정적으로 보도하는 경우가
많아 우리경제 회복에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했다.

WEF에 참석한 많은 정치.경제계 지도자들은 구조조정 담당자들로부터
직접 구조조정 현황을 듣고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형성
했으리라 믿는다.

다보스에 폭설이 내리던 날 서울에도 큰 눈이 내렸다고 한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야 만나는 다보스와 서울이 우연히 같은 조건에 놓이게
됐다.

세계화의 진전 과정에서 결코 소외되지는 않으리라는 것이 우연찮은 동시
폭설이 가져다 준 다보스의 느낌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