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앞다퉈 금리를 내리고 있다.

지난 22일 은행들은 저마다 서둘러 회의를 갖고 금리인하를 결정했다.

인하폭이나 수준도 파격적이다.

기존 대출금리를 만기연장과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내리거나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낮추는 등 소비자 요구를 많이 반영했다.

이날 인하폭을 결정하지 못한 은행들은 곧 내리겠다는 방침만이라도
서둘러 발표하는 모습이었다.

금리인하 경쟁이 벌어진듯하다.

이번 금리인하에 반대하는 견해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수신금리가 오래전에 낮아진데 비하면 대출금리 인하가 뒤늦었다는 지적도
제기되온 터다.

가계대출금리의 인하폭은 미흡하다는 평가도 있다.

더 내려야한다는 주장도 여전히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은행들이 갑작스레 금리인하에 나선데는 석연치않은 구석이 있다.

그동안 은행들은 고금리로 받아놓은 예금때문에 대출금리를 내리기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지난해 11조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수익성도 악화된 상태라며 금리인하에
난색을 보였다.

오히려 경영정상화를 이룰때까지 적정 예대마진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
하기도 했다.

그러던 은행들이 하루 아침에 말을 바꿨다.

김대중 대통령의 한마디에 너도 나도 금리인하에 나선 것이다.

하룻밤새에 은행 경영환경이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물론 김 대통령이 금리인하를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았다.

은행 금리가 높아 기업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예대마진이 높다는 지적도 있기는 했지만 은행들이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런데 재정경제부는 한술 더 뜨고 있다.

대출금리 인하에 부정적인 은행에 대해서는 불이익을 주겠다며 엄포를 놓고
있다.

은행에 대해 조사를 벌여 내릴 여지가 있는 곳은 내리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신 관치금융" 논란이 생길수밖에 없다.

금리인하는 은행 고유의 업무다.

경영여건에 따라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할 사안이다.

정부는 오래전부터 금리에 대해 은행들이 알아서 하라고 발표해왔다.

그러던 정부가 갑작스레 금리인하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담합이나 불공정행위라는 시비는 생각도 않는 듯하다.

우리 은행들의 부실원인을 지적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관치금융
이다.

그 폐해를 없애는데 금융 구조조정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섣부른 금리인하로 은행들의 수익성이 또다시 악화된다면 국민부담만 늘어날
수밖에 없다.

< 정태웅 경제부 기자 redae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