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희씨(29)는 지하철에서 꼬마가 앉아 있는 옆자리는 피한다.

1년여전 귀중한 약속장소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가 꼬마가 흰색 치마
위에 신발자국을 남겨놓았던 것.

지하철이 개통된지 벌써 25년이 됐지만 지하철 에티켓은 여전히 후진적이다.

아이를 신발도 안벗긴채 빈자리에 눕히는 것은 예사다.

아이를 그냥 안고 재워 신발이 옆사람 옷에 닿는 경우도 많지만 무신경하다.

아이가 자리에서 장난을 쳐도, 시끄럽게 떠들면서 지하철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녀도 제지하는 부모는 찾기 힘들다.

아이들의 재롱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상의 피곤함에 짜증을 느끼는
사람도 적지않은데 부모는 이를 아랑곳하지 않는다.

영어회화강사인 필립 라슨씨는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들었는데 어른이
서 있어도 아기가 차지한 자리를 내주는 엄마가 없는 것을 보고 놀라웠다"고
말했다.

그는 "건장한 젊은이들조차 노인에게 좀체 자리양보하는 기색이 없다"며
"노인도 자리를 양보받은 뒤 고맙다는 인사조차 안하는 경우가 있어 딱하게
느껴진다"고 혀를 찼다.

승하차질서나 실내 예절도 나아진게 없다.

시발역에서는 체면도 포기한 좌석쟁탈전이 벌어진다.

환승역에서는 사람이 채 내리지도 않았는데 밀고 들어오는 사람이 부지기수
다.

이때문에 원하는 역에서 못내리는 사람이 꼭 생긴다.

다리를 크게 꼬고 앉아 다른 승객의 접근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 신문을
펼쳐 자리를 넓게 차지하는 사람, 낯뜨겁게 애무하는 젊은 연인들, 시끄럽게
떠들고 저들만의 은어와 욕설을 지껄이는 청소년, 큰 목소리로 휴대폰 통화를
하는 사람 등 남을 무시하는 사람은 너무도 많다.

신문을 잡지 크기 정도로 접어서 보기 때문에 다른 승객에 피해를 주지 않는
일본인의 사례는 본받을만 하다.

여운걸 국제친절매너연구원장은 특히 다리를 넓게 벌리고 앉는데 대해
"방바닥 문화에 익숙하고 삶의 피로가 가득한 한국사회에서 이런 습관은
당연하다고도 볼수 있지만 남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고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지하철안에서 "좀 당겨 앉읍시다"보다는 "실례합니다. 같이 좀 앉을수
있겠습니까"와 같은 친화적이고 완곡한 말씨를 써야 겠다"고 강조했다.

< 정종호 기자 rumba@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