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엔 국제화'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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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들어 일본 논단의 가장 뜨거운 이슈는 "엔화 국제화"다.
오부치 총리는 "엔 국제화"라는 머리띠를 두르고 유럽을 돌았있고 자민당도
위원회까지 만들어가며 부산히 움직이고 있다.
재야의 논객들은 평화헌법개정과 재무장론까지 들먹인다.
경제력에 걸맞은 국제적 지위를 갖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엔 국제화는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
기축통화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외형상의 경제력이나 군사력만이라면
문제는 간단할 것이다.
그러나 통화의 국제화, 다시말해 강력한 "세계경제 센터"가 되기 위해
필요한 요건은 무엇보다 "열린 경제"다.
역설적이지만 세계제국 로마나 파운드화가 하늘을 찌르던 대영제국도
제대로 무역흑자 한번 내본 적이 드물고 이는 지금의 미국도 마찬가지다.
국경을 개방하고 다른 나라의 상품에 국내시장을 완전히 열어제칠 수 있는
국가만이 자국의 화폐를 세계시장에 통용시킬 자격을 갖게 된다는 얘기다.
사람과 상품이 들어가고 이를 대가로 국제시장에 자국화폐가 공급될수
있어야 비로소 국제통화가 된다.
달러화가 기축통화가 된 것이 브레튼우즈 체제와 마셜플랜 때문 만은
아니다.
미국은 지금도 지구촌 "최후의 소비시장(consumer of last resort)"이다.
일본 스스로도 미국에 물건을 팔고 오직 달러를 받고있을 뿐이다.
거대한 흑자를 껴안고 웅크리고 있는 동안 일본은 결코 ''센터''가 될 수
없다.
엔의 국제화를 막고 있는 또하나의 이유는 아시아위기에 대한 일본의 책임
문제다.
일본은 지난 97년 하반기동안 한국에서 1백50억달러를 일시에 회수하는 등
한국과 아시아 위기를 점화시킨 장본인중의 하나다.
나중에는 위기국들의 다급한 자금지원 요청마저 완강하게 거부했다.
돌아보면 당시의 아시아 환란이야말로 엔 국제화의 절호의 기회였지만
일본은 그 기회를 스스로 외면했었다.
엔 국제화를 견제하는 미국의 간섭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넘지 못한
다면 지금이라고 엔 국제화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더욱이 오부치 총리는 엔 국제화를 추진한다면서 유럽으로 먼저 달려갔다.
이 역시 잘못된 장소 선택이다.
엔 국제화의 무대는 누가 뭐래도 아시아다.
오부치 총리가 유럽에서 엔 국제화를 외치고 있는 것은 일본이 아직도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탈아입구"에 두는 이중적 세계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에 불과하다.
50년전이나 지금이나 일본은 별로 달라지지 않고 있다.
그만큼 엔이 가야할 길도 멀다.
정규재 < 국제부 기자 jkj@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4일자 ).
오부치 총리는 "엔 국제화"라는 머리띠를 두르고 유럽을 돌았있고 자민당도
위원회까지 만들어가며 부산히 움직이고 있다.
재야의 논객들은 평화헌법개정과 재무장론까지 들먹인다.
경제력에 걸맞은 국제적 지위를 갖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엔 국제화는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
기축통화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외형상의 경제력이나 군사력만이라면
문제는 간단할 것이다.
그러나 통화의 국제화, 다시말해 강력한 "세계경제 센터"가 되기 위해
필요한 요건은 무엇보다 "열린 경제"다.
역설적이지만 세계제국 로마나 파운드화가 하늘을 찌르던 대영제국도
제대로 무역흑자 한번 내본 적이 드물고 이는 지금의 미국도 마찬가지다.
국경을 개방하고 다른 나라의 상품에 국내시장을 완전히 열어제칠 수 있는
국가만이 자국의 화폐를 세계시장에 통용시킬 자격을 갖게 된다는 얘기다.
사람과 상품이 들어가고 이를 대가로 국제시장에 자국화폐가 공급될수
있어야 비로소 국제통화가 된다.
달러화가 기축통화가 된 것이 브레튼우즈 체제와 마셜플랜 때문 만은
아니다.
미국은 지금도 지구촌 "최후의 소비시장(consumer of last resort)"이다.
일본 스스로도 미국에 물건을 팔고 오직 달러를 받고있을 뿐이다.
거대한 흑자를 껴안고 웅크리고 있는 동안 일본은 결코 ''센터''가 될 수
없다.
엔의 국제화를 막고 있는 또하나의 이유는 아시아위기에 대한 일본의 책임
문제다.
일본은 지난 97년 하반기동안 한국에서 1백50억달러를 일시에 회수하는 등
한국과 아시아 위기를 점화시킨 장본인중의 하나다.
나중에는 위기국들의 다급한 자금지원 요청마저 완강하게 거부했다.
돌아보면 당시의 아시아 환란이야말로 엔 국제화의 절호의 기회였지만
일본은 그 기회를 스스로 외면했었다.
엔 국제화를 견제하는 미국의 간섭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넘지 못한
다면 지금이라고 엔 국제화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더욱이 오부치 총리는 엔 국제화를 추진한다면서 유럽으로 먼저 달려갔다.
이 역시 잘못된 장소 선택이다.
엔 국제화의 무대는 누가 뭐래도 아시아다.
오부치 총리가 유럽에서 엔 국제화를 외치고 있는 것은 일본이 아직도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탈아입구"에 두는 이중적 세계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에 불과하다.
50년전이나 지금이나 일본은 별로 달라지지 않고 있다.
그만큼 엔이 가야할 길도 멀다.
정규재 < 국제부 기자 jkj@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