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1000년 준비] (1) 패러다임 시프트 <5> '스톡->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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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톡(stock)에서 플로(flow)로 ]
미래학자 에디드 와이너는 "에모틸(Emotile) 사회"의 도래를 예견했었다.
에모틸이란 "정서(emotion)"와 "유동성(mobility)"의 합성어다.
정서는 창의성을 말한다.
유동성은 변화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창조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가 "에모틸 사회"다.
새로운 정신과 시스템들이 쉬지않고 흐르며 상호작용하는 유동상태의
세계다.
"스톡(stock)"에서 "플로(flow)"로의 이동이다.
이 변화는 기본적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근원이 달라진 데서 기원한다.
산업사회에선 재화가 곧 자산이었다.
쌓아놓은 양(stock)과 부의 크기가 비례했다.
그 크기를 일정시점에서 측정한 것이 스톡이다.
하지만 새로운 부의 원천인 정신과 지식은 축적이나 보유만으론 아무런
힘이 못된다.
정지된 상태에선 정보의 가치는 제로(0)다.
가치는 "활용(flow)"하는 순간부터야 만들어 진다.
그래서 일정기간 동안 움직인 양을 잰다.
그것이 플로다.
물리학으로 치면 스톡은 힘의 단순한 크기인 스칼라(scalar)이고 플로는
힘과 방향이 조합된 벡터(vector)다.
플로 경쟁력은 활용도에서 나온다.
쓰지않고 모아두는 것은 무용지물이다.
회전력과 유통속도를 높일수록 힘이 증폭된다.
흐름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킨 현대문명이 인터넷이다.
인터넷에 스톡은 하나도 없다.
그 자체가 정보들로 연결된 망(network)일 뿐이다.
건물도 도로도 없지만 상품을 쌓아놓고 물건을 나른다.
쇼 윈도이고 매장이다.
돈도 이곳에선 빛의 속도로 이동한다.
정신과 물질이 함께 흐르는 4차원의 통로다.
여기선 물건을 만드는 기술은 경쟁력이 아니다.
흘러가는 정보를 집어내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래서 "know-how"보다는 "know-where"를 키워야 한다.
광대역과 광속의 세계는 경제논리와 현상을 개조하고 있다.
우선 자산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산업사회에선 물리적 양이 중요했다.
부동산과 설비가 주요재산이었다.
그러나 플로의 세계에선 빠르게 변신할 수 있는 재산이 제일이다.
바로 "유동성(liquidity)"이다.
비단 현찰이나 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동산뿐이 아니다.
지식과 정보, 기술, 인력 등이 오히려 대표적인 플로형 자산이다.
유동성이 떨어지는 자산은 되레 짐이다.
산업사회에서 재력을 재는 잣대노릇을 하던 부동산이 세기말에 오히려
재앙이 돼버린 것도 그래서다.
일반적으로 자산의 안전성이 높으면 수익성이 떨어지는게 시장경제원리다.
하지만 한국의 땅엔 이런 원리가 먹혀들지 않았다.
"저위험 고수익" 투자상품이었다.
보유과세가 낮아 세금걱정도 없었고 은행에선 부동산만을 담보로 쳐 주었다.
대출과 부동산은 서로를 원했다.
구입한 토지를 파는 것은 하책이었다.
모든 재원은 한번 묶이면 빠져 나오기 어려운 부동산으로 몰릴 수 밖에
없었다.
땅값은 오르기만 하는 이 땅의 "토지불패" 신화는 이렇게 생겨나고
고착됐다.
막상 거품이 꺼지고 위기가 닥치자 빚보증 덩어리가 된 부동산은
아무짝에도 쓰지 못했다.
오히려 애물딴지다.
그렇게 부동산을 밝히던 금융회사들은 부실채권만 잔뜩 받아둔 꼴이 됐다.
사고의 근원이었다.
플로시대로의 변화를 거부하고 스톡시대의 가치에 집착한 결과다.
사회구조라고 플로시대에서 그대로일 수 없다.
권력도 부동의 영역이 아니다.
과거엔 지위나 계급이 권한을 보장했다.
지금은 지위와 권한은 별개다.
차장급 팀장밑에 있는 부장급 팀원은 이제 낮설지 않은 풍속도다.
국가와 국제사회도 그렇다.
시민들이 결성한 자조적 단체들이 정부를 지시한다.
비정부기구(NGO)들이 세계 도처에서 국가의 역할을 대신한다.
권력도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중이다.
조직의 형태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사회와 고객취향의 흐름을 시시각각 충족시킬 수 있도록 유동형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고용도 마찬가지다.
이제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있다.
평생직업이 있을 뿐이다.
사람을 뽑아도 연봉제나 계약직이다.
시대를 쫓아가는 능력을 가진 전문가일수록 더하다.
기업은 유능한 인력이라고 무작정 묶어 두려하지 않는다.
필요할 때 제대로 써 먹겠다는 계산이다.
피고용자 자신도 유용할 때 제값을 높이려 든다.
고용주나 피고용자 모두 플로형을 선택하는 것이다.
고여 있지 않고 흘러가는 물은 정형화가 불가능하다.
인간의 세계관이 다분법으로 천이하는 이치다.
스톡의 사회는 이분법이 지배했다.
생존 아니면 퇴출, 승패 우열 주종 귀천 선악...
하나같이 삭막한 흑백논리다.
이데올로기도 보수나 개혁중에서 한가지를 택해야 했다.
인간정신 스스로가 고정관념의 노예이기를 자청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다분법의 세계다.
엄청난 정보가 홍수를 이루고 조류가 양산된다.
쉬지않고 관계가 창출되고 재조직된다.
"보유가 아닌 활용을 통한 고부가가치의 창출"
이것이 플로시대 생산성의 키워드다.
정보와 지식, 인재와 기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도록 터 주는게 정부와
사회의 선택이어야 한다.
한국경제가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로까지 가게 된 까닭은 과다한
부채와 빈약한 수익력의 미스매칭에 있었다.
외형팽창 만큼 흐름에 대한 관리력을 갖추지 못한 결과다.
그것은 외환위기가 아니라 "플로 위기"였다.
[ 특별취재팀 = 정만호(국제부장/팀장) 육동인(사회2부) 임혁(국제부)
이의철(정치부) 조주현(국제부)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9일자 ).
미래학자 에디드 와이너는 "에모틸(Emotile) 사회"의 도래를 예견했었다.
에모틸이란 "정서(emotion)"와 "유동성(mobility)"의 합성어다.
정서는 창의성을 말한다.
유동성은 변화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창조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가 "에모틸 사회"다.
새로운 정신과 시스템들이 쉬지않고 흐르며 상호작용하는 유동상태의
세계다.
"스톡(stock)"에서 "플로(flow)"로의 이동이다.
이 변화는 기본적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근원이 달라진 데서 기원한다.
산업사회에선 재화가 곧 자산이었다.
쌓아놓은 양(stock)과 부의 크기가 비례했다.
그 크기를 일정시점에서 측정한 것이 스톡이다.
하지만 새로운 부의 원천인 정신과 지식은 축적이나 보유만으론 아무런
힘이 못된다.
정지된 상태에선 정보의 가치는 제로(0)다.
가치는 "활용(flow)"하는 순간부터야 만들어 진다.
그래서 일정기간 동안 움직인 양을 잰다.
그것이 플로다.
물리학으로 치면 스톡은 힘의 단순한 크기인 스칼라(scalar)이고 플로는
힘과 방향이 조합된 벡터(vector)다.
플로 경쟁력은 활용도에서 나온다.
쓰지않고 모아두는 것은 무용지물이다.
회전력과 유통속도를 높일수록 힘이 증폭된다.
흐름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킨 현대문명이 인터넷이다.
인터넷에 스톡은 하나도 없다.
그 자체가 정보들로 연결된 망(network)일 뿐이다.
건물도 도로도 없지만 상품을 쌓아놓고 물건을 나른다.
쇼 윈도이고 매장이다.
돈도 이곳에선 빛의 속도로 이동한다.
정신과 물질이 함께 흐르는 4차원의 통로다.
여기선 물건을 만드는 기술은 경쟁력이 아니다.
흘러가는 정보를 집어내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래서 "know-how"보다는 "know-where"를 키워야 한다.
광대역과 광속의 세계는 경제논리와 현상을 개조하고 있다.
우선 자산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산업사회에선 물리적 양이 중요했다.
부동산과 설비가 주요재산이었다.
그러나 플로의 세계에선 빠르게 변신할 수 있는 재산이 제일이다.
바로 "유동성(liquidity)"이다.
비단 현찰이나 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동산뿐이 아니다.
지식과 정보, 기술, 인력 등이 오히려 대표적인 플로형 자산이다.
유동성이 떨어지는 자산은 되레 짐이다.
산업사회에서 재력을 재는 잣대노릇을 하던 부동산이 세기말에 오히려
재앙이 돼버린 것도 그래서다.
일반적으로 자산의 안전성이 높으면 수익성이 떨어지는게 시장경제원리다.
하지만 한국의 땅엔 이런 원리가 먹혀들지 않았다.
"저위험 고수익" 투자상품이었다.
보유과세가 낮아 세금걱정도 없었고 은행에선 부동산만을 담보로 쳐 주었다.
대출과 부동산은 서로를 원했다.
구입한 토지를 파는 것은 하책이었다.
모든 재원은 한번 묶이면 빠져 나오기 어려운 부동산으로 몰릴 수 밖에
없었다.
땅값은 오르기만 하는 이 땅의 "토지불패" 신화는 이렇게 생겨나고
고착됐다.
막상 거품이 꺼지고 위기가 닥치자 빚보증 덩어리가 된 부동산은
아무짝에도 쓰지 못했다.
오히려 애물딴지다.
그렇게 부동산을 밝히던 금융회사들은 부실채권만 잔뜩 받아둔 꼴이 됐다.
사고의 근원이었다.
플로시대로의 변화를 거부하고 스톡시대의 가치에 집착한 결과다.
사회구조라고 플로시대에서 그대로일 수 없다.
권력도 부동의 영역이 아니다.
과거엔 지위나 계급이 권한을 보장했다.
지금은 지위와 권한은 별개다.
차장급 팀장밑에 있는 부장급 팀원은 이제 낮설지 않은 풍속도다.
국가와 국제사회도 그렇다.
시민들이 결성한 자조적 단체들이 정부를 지시한다.
비정부기구(NGO)들이 세계 도처에서 국가의 역할을 대신한다.
권력도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중이다.
조직의 형태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사회와 고객취향의 흐름을 시시각각 충족시킬 수 있도록 유동형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고용도 마찬가지다.
이제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있다.
평생직업이 있을 뿐이다.
사람을 뽑아도 연봉제나 계약직이다.
시대를 쫓아가는 능력을 가진 전문가일수록 더하다.
기업은 유능한 인력이라고 무작정 묶어 두려하지 않는다.
필요할 때 제대로 써 먹겠다는 계산이다.
피고용자 자신도 유용할 때 제값을 높이려 든다.
고용주나 피고용자 모두 플로형을 선택하는 것이다.
고여 있지 않고 흘러가는 물은 정형화가 불가능하다.
인간의 세계관이 다분법으로 천이하는 이치다.
스톡의 사회는 이분법이 지배했다.
생존 아니면 퇴출, 승패 우열 주종 귀천 선악...
하나같이 삭막한 흑백논리다.
이데올로기도 보수나 개혁중에서 한가지를 택해야 했다.
인간정신 스스로가 고정관념의 노예이기를 자청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다분법의 세계다.
엄청난 정보가 홍수를 이루고 조류가 양산된다.
쉬지않고 관계가 창출되고 재조직된다.
"보유가 아닌 활용을 통한 고부가가치의 창출"
이것이 플로시대 생산성의 키워드다.
정보와 지식, 인재와 기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도록 터 주는게 정부와
사회의 선택이어야 한다.
한국경제가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로까지 가게 된 까닭은 과다한
부채와 빈약한 수익력의 미스매칭에 있었다.
외형팽창 만큼 흐름에 대한 관리력을 갖추지 못한 결과다.
그것은 외환위기가 아니라 "플로 위기"였다.
[ 특별취재팀 = 정만호(국제부장/팀장) 육동인(사회2부) 임혁(국제부)
이의철(정치부) 조주현(국제부)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