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계는 올한해 공황의 터널을 지나 왔다.

연쇄부도 행진이 이어졌고 중소기업인들은 기업 할 의욕을 잃었다.

얼어붙은 금융창구, 내수시장 침체, 대기업 구조조정이 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이 와중에도 수출기업을 중심으로 일부 기업들은 호황을 누렸다.

중기지원 정책이 전례없이 무더기로 쏟아진 한해이기도 했다.

<> 부도공포에 시달렸다 =작년말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진입과 함께
몰아닥친 연쇄부도 행진은 연초에도 이어졌다.

1,2월에 쓰러진 중소기업만 각각 3천3백14개, 3천3백71개.

작년 같은기간의 3배 수준을 웃돌았다.

외자유치를 내세운 고금리정책과 금융경색은 유망기업까지 부도행렬에
합류시켰다.

국내 처음으로 반도체 웨이퍼 재활용 기술을 개발한 S사는 상용화에
성공한지 3개월을 넘지 못하고 부도처리됐다.

직접금융에서도 우량대기업에만 돈이 몰리면서 연쇄부도의 먹구름은 3.4분기
까지 걷히지 않았다.

중소기업은 올들어 11월말까지 회사채 발행으로 4천7백65억원을 조달했다.

총회사채발행액의 0.9%였다.

작년 같은기간 조달실적(1조9천1백12억원,7.1%)의 4분의 1 수준으로 격감한
것.

6.29 은행퇴출로 자금회수를 당해 쓰러지는 기업도 속출했다.

부도증가는 신용보증기관의 대위변제 급증으로 이어졌고 이는 신규보증
위축으로 나타났다.

8월 한달간 신규보증은 8천7백28억원에 그쳤다.

3월 실적(7조4천7백74억원)과 비교하면 얼마나 위축됐는지를 짐작케 한다.

4.4분기 들어서면서 상업어음 할인이 증가세로 돌아서는 등 금융경색이
풀릴 조짐을 보이면서 부도도 진정기미를 보였다.

그러나 빅딜 등 대기업구조조정의 본격화로 내년에도 부도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 것으로 중소기업들은 우려하고 있다.

<> 자금사정의 양극화와 주목 받는 수출기업 =중소기업 대출잔액이 9월부터
증가세로 돌아섰지만 혜택은 우량 중소기업에만 돌아갔다.

정부의 중기대출 독려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심화시켰을 뿐이다.

은행들의 대출제의 공세에 시달리는 우량업체중에는 수출업체가 많았다.

영원무역 태평양물산 메디슨 등이 대표적이다.

환율상승을 호기로 매출 이익 모든 면에서 고성장을 지속한 기업들이다.

전선업계는 수출과 내수기업의 명암을 극명하게 보여 줬다.

올들어 12개사가 쓰러졌지만 극동과 대성전선 등 해외로 일찌감치 눈을
돌렸던 기업들은 불황을 극복했다.

수출업체의 고성장을 지켜보면서 중소기업들은 내수시장에 안주해온 허약한
체질을 개선해야 살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비금속 발열체를 영국에 첫 수출한 대일PFT처럼 수출 초년생이 증가한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다.

에스제이엠 등 수출업체로 변신에 나선 기업도 늘었다.

이에 힘입어 중소기업 수출은 꾸준히 늘었다.

총수출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4분기 40.4%에서 2.4분기
41.8%, 3.4분기 45.9%로 커졌다.

정부도 수출지원에 발벗고 나섰다.

12월초 전국 11곳에서 일제히 중소기업 수출지원센터를 가동한데 이어
내년부터는 퇴직한 수출전문가를 연간 4천여개의 중소기업에 파견, 지원키로
했다.

<> 위축된 기업가 정신 =올들어 창업기업수는 10월까지 9월 한달을 제외
하곤 작년 수준을 넘어선 적이 없다.

"부채만 떠안아 주면 기업을 그냥 넘기겠다는 기업까지 생겨 났다"(창륜산업
조용이 사장).

제조업을 하던 기업인들이 공장임대에 나서면서 인천 남동공단 등에는
임대공장이 부쩍 늘었다.

화의 등 기업회생에서부터 원자재구입 외환거래 구조조정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중소기업이 불이익을 받는 현실에 활력을 잃은 것이다.

기계를 돌릴 의욕을 잃은 기업인들은 유휴설비를 거리로 내놓았다.

구인공고가 사라진 공단 벽보에는 유휴설비 매물이 덕지 덕지 붙기 시작
했다.

유휴설비는 전국적으로 20조원에 이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부는 국내 유휴설비가 헐값에 해외에 매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유휴설비
거래장터를 개설했다.

<> 쏟아진 중기 지원책 =자금난 해소, 수출 지원, 벤처육성을 골자로 한
정책이 홍수를 이뤘다.

"중기정책은 더 이상 바랄게 없다"(기협중앙회 이원호 부회장)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해외인증 획득 지원등 현장의 호응을 얻은 정책도 있으나 무역금융 전액
보증 실시 등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 정부 신뢰를 추락시킨 정책도 적지
않았다.

중소기업계가 연쇄부도의 원흉이라고 지목했던 어음제도는 개선안만 나왔을
뿐 제대로 수술대에 오르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수술을 집도하려는 측이 중소기업특별위원회, 국민회의, 재경부 등 너무
많았던 것이 한 요인으로 지적됐다.

어음할인료 인상등 변죽만 울리는데 그쳤을 뿐이다.

<>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창업이 살아나는 조짐을
보였다.

11월에 창업기업수(7대 도시기준)가 1천7백98개로 작년 수준(1천5백49개)을
크게 웃돌았다.

특히 올들어 창업한 기업은 예년과는 다른 유형들이 많았다.

대정 처럼 부도난 기업의 종업원들이 창업한 케이스가 속출했다.

씨씨텍처럼 기업구조조정으로 사장 위기에 처한 기술을 사업화하기 위한
창업도 이어졌다.

대기업 구조조정으로 분사한 일부 기업들은 경쟁력있는 중소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아픔을 겪은 창업기업이 많았다는 얘기다.

공단 가동률도 회복세를 타기 시작했다.

한국산업공단에 따르면 전국 20개 산업단지의 가동률이 지난 7월 68.6%를
최저점으로 높아지기 시작, 12월들어 73.8%를 기록했다.

내년엔 꿈틀대는 중소기업의 불씨를 지피는데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 중소기업 금융지원 일지 >>

<>1.12 =ADB자금 10억달러 특별보증
<>1.19 =신용보증확대(운용배수 17배에서 20배)
<>2.2 =산업은행 원화표시 외화대출금 5억3천3백만달러 상환기한 1년연장
<>2.16 =상반기 만기도래 원화대출금(20조원) 상환기한 6개월 연장
<>2.19 =총액한도대출 확대(4.6조원에서 5.6조원)
<>4.6 =IBRD차관 10억달러로 수입신용장개설 지원
<>5.1 =수출환어음 매입지원과 무역금융 융자한도 및 비율 자율화
총액한도대출 대상 상업어음 만기제한(90일) 폐지
<>5.15 =하반기 만기도래 원화대출금 상환기한 6개월 연장
15개 은행이 12조5천억원 조성
<>6.1 =일본 원자재 및 자본재에 대한 수입금융지원
<>6.26 =특별신용보증대상에 DA수출환어음 매입 포함
<>6.28 =중견 중소기업 여신(84조원) 상환기한 연장
<>7.10 =LC 수취 중소기업의 무역금융 전액보증
<>7.11 =무역금융 수출실적에 구매승인서 포함
<>8.20 =무역금융 포괄 금융대상 확대(1천만달러에서 2천만달러)
<>9.1 =무역금융 신용보증 대상에 중견기업 포함
총액한도대출 5조6천억원에서 7조6천억원으로 확대하고 금리는
5%에서 3%로 인하
<>9.16 =구조개선자금 5천3백억원에 대한 중진공 직접대출
<>10.1 =용역수출을 무역금융 융자대상에 포함
<>10.21 =중견 중소 수출상사들이 수출용 완제품의 국내 구매에 필요한
자금을 무역금융으로 지원
<>11.4 =IBRD 차관 10억달러를 신용보증기관에 추가 출연
<>11.6 =중소기업 연합채권 발행(총82억원)
<>11.9 =중소기업구조조정 채권 발행
<>12.10 =내년도 상반기에 도래하는 여신(56조5천억원)의 만기 연장
<>12.14 =유휴설비 수출에 대한 무역금융 지원
<>12.17 =국민 기업 신한 한미 4개은행, 내년에 20조7백억원 신규대출 결정

< 오광진 기자 kjo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