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순훈 전 정보통신부장관의 전격 사임은 민간기업 경영자가 관료사회에
적응하기 얼마나 힘든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엘리트 엔지니어 출신의 유능한 기업경영자"가 바로 "유능한 장관"으로
통하지는 않는다는게 한국사회의 풍토라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배 전 장관의 사임은 우선 기존 관료와 기업인 출신 장관의 정책에 대한
시각차이가 큰데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배 전 장관은 취임 초기부터 정부 정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장관 취임후 첫 외부 강연인 지난 2월26일 생산성본부 초청 조찬강연회에서
"빅딜은 기업총수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결정하는 것이지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해선 안된다.

정부가 간섭해서 실패하면 정부부담으로 돌아온다"며 당시 정부주도로
논의되던 빅딜에 대한 비판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또 실업대책으로 시작했던 취로사업에 대해서도 "주택 2백만호 건설사업으로
기능공들이 공장을 떠나 신발사업이 망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또 지난 4월 24일 고려대 경영대학원 초청강연에서 그는 경상수지 확대
정책도 비판했다.

"국내 저축이 일정한 우리나라에서는 경상수지가 늘면 국내투자가 줄어들수
밖에 없어 중소기업이 대거 문을 닫고 실업자가 엄청나게 생겨 나라가
망한다"는 주장을 폈다.

배 전 장관의 이런 성향은 16일 전경련 초청 간담회에서도 이어져 결국
"대우전자와 삼성자동차의 빅딜 반대"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배 전 장관은 기업 경영인출신 장관으로서 업무수행에 있어서도 심한
패배감을 느꼈음직하다.

관료사회의 변화를 거부하는 경직된 분위기와 텃세가 그의 의욕을 여러차례
꺾었던 것 같다.

그는 "무슨 일을 하려 하면 협의다 국회다 해서 제대로 일이 진척되는
경우가 드물고 의사결정이 너무 복잡하다"는 얘기를 틈만 나면 해왔다.

일부에서는 배 전 장관의 업무처리가 치밀하지 못하고 조직장악도 제대로
못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수시로 기업인들로부터 애로사항을 듣고 외자유치를 위해 외국기업인을
만나면서 영국을 직접 방문하는 등 발벗고 뛰었지만 목적한 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더욱이 그 자신이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외자유치 촉진을 위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자 더욱 심한 좌절감
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배 전 장관 사임 소식을 접한 정보통신부 한 공무원은 "한국의 관료 사회는
아직 민간기업 경영자를 장관으로 받아들일 풍토가 안돼 있다"고 말했다.

< 정건수 기자 kschu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