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연구단지 '공동화'] (2) '떠나는 연구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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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연구소의 핵공학분야 권위자인 오모박사(44)는 지난 6월 사표를
던지고 미국으로 훌쩍 떠났다.
오박사는 미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87년 귀국, 10년넘게
핵설계기술개발에 몰두해온 이 분야의 몇 안되는 전문가이다.
미국 유수의 연구기관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의를 물리치고 귀국을
선택했던 것은 자신이 배운 지식을 고국에 바치겠다는 일념에서였다.
그런 그가 사직서에 "한국의 과학기술 연구풍토는 너무 열악하다"는 말을
남기고 미국으로 되돌아 간 것이다.
원자력 기술의 본산인 대덕 원자력연구소에서는 올들어 11명의 석.박사급
연구원이 오박사처럼 스스로 연구소를 떠났다.
구조조정의 압력에 밀려 명예퇴직한 고급연구인력까지 포함하면 모두
19명으로 전체 연구원의 10%정도가 물러난 것이다.
기계연구원의 조모박사(40)는 최근 지방의 한 대학으로부터 교수자리를
제의받고 미련없이 연구소를 그만뒀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연구원으로 있는 것보다 그래도 신분이 보장되는
교수가 훨씬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계연구원에서도 조 박사처럼 스스로 자리를 박차고 나간 석/박사급
연구원이 올해 벌써 17명에 이른다.
전자통신연구원의 경우 무려 1백26명의 석/박사 인력이, 과학기술원도
41명이 떠났다.
대부분 대학이나 연구환경이 상대적으로 괜찮은 대기업 연구소로 옮겼다.
고급 두뇌들이 너도나도 대덕연구단지를 떠나고 있다.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석.박사급 과학기술인력들이 몰려들었던 국내
최대의 싱크탱크 단지가 이제는 "있어봤자 세월만 축내는 곳"쯤으로 전락한
것이다.
새벽녘까지 불을 밝히며 열기를 뿜어내던 연구실은 이제 거의 찾아볼수
없고 한밤중에도 연구원들의 승용차로 가득했던 연구소 주차장은 텅
비어있는 게 지금 대덕연구단지의 모습이다.
올들어 자의든 타의든 대덕연구단지내 정부 출연연구소나 민간
기업연구소를 떠난 전문연구인력들은 모두 1천명이 넘는다.
지난 73년 단지가 들어선 이래 꾸준히 늘어 지난해 1만7천여명에
이르렀던 연구인력 숫자가 올해 처음 감소한 것이다.
출연연구소 구조조정에 따른 명예퇴직이나 민간 연구소 폐쇄및 연구중단
등으로 어쩔수 없이 밀려난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더 나은 연구환경을
찾아 스스로 그만두고 있다.
특히 젊고 유능한 연구원들 사이에 이같은 대덕단지탈출 풍조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들이 대덕단지를 등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덕단지관리본부 관계자는 "무엇보다 연구직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된
데 따른 것"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출연연구소 연구원이라는 직업은 보수는 많지 않아도 평생을
별다른 고민없이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자리로 인식됐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원자력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앞으로 얼마를 더 자른다느니 정부지원
중단으로 어떤 프로젝트가 중단된다느니 등의 소문으로 어느 연구소
할것없이 분위기가 뒤숭숭하다"며 "이런 여건 누가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특히 "과거 정권이 바뀔때마다 예외없이 출연연구소가 도마위에
올라 조직개편이나 인원감축의 홍역을 치르곤 했지만 올해만큼 정도가
심한 적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올들어 대덕연구단지내 대부분의 연구소들은 경상비를 작년보다 평균
20%정도 줄인데 이어 내년에도 20%를 추가 감축할 예정이다.
인원감축규모도 연구 행정 기능직 할것없이 30%선에 이를 것이라는게
통설이다.
연구소보다는 대학을 선호하는 국내 풍토도 문제다.
화학연구소 유성은박사는 "우수한 연구원들이 대우좋고 신분보장이 잘
되는 대학교수로 옮길 기회만 찾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분위기가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를 망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는 연구환경도 연구원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이미 국내 고급 두뇌의 해외유출 문제는 심각한 수준에 와있다.
원자력연구소의 양모박사는 "미국등 선진국 연구소에서 일하다 한국에
돌아온 후 3년만 지나면 뭔가 자꾸 뒤떨어진다는 것을 느낌을 받는게 한국
과학기술계의 현실"이라며 "해외파 출신 상당수 연구원들사이에 동요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연구원은 "연구에만 몰두 할수 있게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은
결국 정부의 몫"이라고 지적하고 "과기부는 이제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에
대해 보다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것"이라고 강조했다.
< 대덕=정종태 기자 jtchu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7일자 ).
던지고 미국으로 훌쩍 떠났다.
오박사는 미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87년 귀국, 10년넘게
핵설계기술개발에 몰두해온 이 분야의 몇 안되는 전문가이다.
미국 유수의 연구기관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의를 물리치고 귀국을
선택했던 것은 자신이 배운 지식을 고국에 바치겠다는 일념에서였다.
그런 그가 사직서에 "한국의 과학기술 연구풍토는 너무 열악하다"는 말을
남기고 미국으로 되돌아 간 것이다.
원자력 기술의 본산인 대덕 원자력연구소에서는 올들어 11명의 석.박사급
연구원이 오박사처럼 스스로 연구소를 떠났다.
구조조정의 압력에 밀려 명예퇴직한 고급연구인력까지 포함하면 모두
19명으로 전체 연구원의 10%정도가 물러난 것이다.
기계연구원의 조모박사(40)는 최근 지방의 한 대학으로부터 교수자리를
제의받고 미련없이 연구소를 그만뒀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연구원으로 있는 것보다 그래도 신분이 보장되는
교수가 훨씬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계연구원에서도 조 박사처럼 스스로 자리를 박차고 나간 석/박사급
연구원이 올해 벌써 17명에 이른다.
전자통신연구원의 경우 무려 1백26명의 석/박사 인력이, 과학기술원도
41명이 떠났다.
대부분 대학이나 연구환경이 상대적으로 괜찮은 대기업 연구소로 옮겼다.
고급 두뇌들이 너도나도 대덕연구단지를 떠나고 있다.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석.박사급 과학기술인력들이 몰려들었던 국내
최대의 싱크탱크 단지가 이제는 "있어봤자 세월만 축내는 곳"쯤으로 전락한
것이다.
새벽녘까지 불을 밝히며 열기를 뿜어내던 연구실은 이제 거의 찾아볼수
없고 한밤중에도 연구원들의 승용차로 가득했던 연구소 주차장은 텅
비어있는 게 지금 대덕연구단지의 모습이다.
올들어 자의든 타의든 대덕연구단지내 정부 출연연구소나 민간
기업연구소를 떠난 전문연구인력들은 모두 1천명이 넘는다.
지난 73년 단지가 들어선 이래 꾸준히 늘어 지난해 1만7천여명에
이르렀던 연구인력 숫자가 올해 처음 감소한 것이다.
출연연구소 구조조정에 따른 명예퇴직이나 민간 연구소 폐쇄및 연구중단
등으로 어쩔수 없이 밀려난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더 나은 연구환경을
찾아 스스로 그만두고 있다.
특히 젊고 유능한 연구원들 사이에 이같은 대덕단지탈출 풍조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들이 대덕단지를 등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덕단지관리본부 관계자는 "무엇보다 연구직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된
데 따른 것"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출연연구소 연구원이라는 직업은 보수는 많지 않아도 평생을
별다른 고민없이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자리로 인식됐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원자력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앞으로 얼마를 더 자른다느니 정부지원
중단으로 어떤 프로젝트가 중단된다느니 등의 소문으로 어느 연구소
할것없이 분위기가 뒤숭숭하다"며 "이런 여건 누가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특히 "과거 정권이 바뀔때마다 예외없이 출연연구소가 도마위에
올라 조직개편이나 인원감축의 홍역을 치르곤 했지만 올해만큼 정도가
심한 적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올들어 대덕연구단지내 대부분의 연구소들은 경상비를 작년보다 평균
20%정도 줄인데 이어 내년에도 20%를 추가 감축할 예정이다.
인원감축규모도 연구 행정 기능직 할것없이 30%선에 이를 것이라는게
통설이다.
연구소보다는 대학을 선호하는 국내 풍토도 문제다.
화학연구소 유성은박사는 "우수한 연구원들이 대우좋고 신분보장이 잘
되는 대학교수로 옮길 기회만 찾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분위기가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를 망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는 연구환경도 연구원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이미 국내 고급 두뇌의 해외유출 문제는 심각한 수준에 와있다.
원자력연구소의 양모박사는 "미국등 선진국 연구소에서 일하다 한국에
돌아온 후 3년만 지나면 뭔가 자꾸 뒤떨어진다는 것을 느낌을 받는게 한국
과학기술계의 현실"이라며 "해외파 출신 상당수 연구원들사이에 동요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연구원은 "연구에만 몰두 할수 있게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은
결국 정부의 몫"이라고 지적하고 "과기부는 이제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에
대해 보다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것"이라고 강조했다.
< 대덕=정종태 기자 jtchu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