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위기의 뒤에는 초단기 국제투기세력인 헤지펀드가 도사리고
있다는 비난이 강하다.

작년에는 아시아시장에서 자금을 일시에 회수, 외환위기를 촉발하더니
요즘엔 막대한 투자손실을 입고 세계금융시장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헤지펀드의 폐해가 부각되자 헤지펀드에 대해 강력한 규제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여론이 높다.

미국 금융정책의 대가인 폴 볼커 전 FRB(연준리)의장도 헤지펀드
규제론자중 하나다.

그는 지난 몇년간 엄청나게 커진 국제 투기자본이 경제규모가 작은
신흥시장을 유린하기는 식은 죽 먹기라며 신흥국가들은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자본통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지금처럼 글로벌화된 국제금융시스템에서는 국제사회가 헤지펀드에 대해
자유방임이 아닌 새로운 접근방식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 정리=조주현 기자 forest@ >

---------------------------------------------------------------------

[ 특별기고 : 세계경제 ]

투기자본들이 언제나 객관적 현실에 기초해 투자대상을 쫓아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순간적인 시장동향과 이에 대한 즉각적인 판단에 의해서도
움직인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순간적으로 느끼는 것 자체가 곧 현실일 지도
모른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투기자본의 움직임은 분위기에 힙쓸려 다니는
양떼같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이는 시장흐름을 더욱 요동치게 만들기도 한다.

그만큼 돈은 빨리 돈다.

시장에서 돈을 잃었다면 이것은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지불하는
작은 손실로 받아들여지는 게 통례다.

탄탄한 금융구조를 갖고 있고 크고 잘 세분화된 경제체제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최소한의 일시적 손실을 감수하고서도 태풍에서 비켜날 수 있는 탄력을
갖고 있는 게 투기자본의 속성이다.

그러나 신흥공업국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대부분의 이머징 마켓은 경제규모가 작다.

금융기관의 규모 역시 국제적인 기준에 비추어보면 영세할 수밖에 없다.

인도네시아나 태국 혹은 말레이시아의 뱅킹시스템은 미국에서 한 지역을
떼어낸 것 정도밖에 안된다.

이들 나라의 국민총생산(GNP)은 미국의 대형 금융기관이 운용하는
자금보다도 적다.

이에비해 국제 금융자본의 규모는 엄청나게 커졌다.

또 아주 적은 비용을 들이면서도 즉각적으로 자금이 전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머징 이코노미에서 뭉칫돈들이 보다 원활하게 움직이도록 온갖 기술들이
개발돼 있는 상태다.

오늘날 발달된 컴퓨터와 통신시스템, 그리고 자본시장의 개방 추세는
전 지구에서 일어나는 금융거래를 단추 하나로 순식간에 결제할수 있게
만들었다.

이같은 변화들은 투기 자금들로 하여금 보다 많은 이익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조성하고 의욕을 북돋웠다.

하지만 국제 투기자금들이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기 위해선 전제조건이
있다.

위기가 발생하고 급격한 변화가 생긴다 하더라도 투자환경 자체는
안전해야 한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처럼 은행들이 갑자기 문을 닫는 사태가 발생해서는
안된다.

더 중요한 것은 정부가 민주적이고 정직해야 하며 은행이 탄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전제조건의 중요성은 더이상 강조할 필요도 없는 기본조건에 속한다.

또 투명한 회계시스템이 적용되어야 하고 정책 입안자들이 은행의 목을
죄지 않아야 한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금융시스템 전반이 투명해야 한다는 얘기다.

작고 개방된 경제체제는 투기자본으로부터 쉽게 공격을 당할 수밖에
없다.

거대한 자금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작은 나라의 금융시장은 마치 태풍이
불고 있는 거대한 바닷속에 놓여있는 선박과 같은 처지로 전락한다.

안전한 대피방법은 큰 항구를 찾는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달러를 병행화폐로 채용했다.

많은 은행중 오직 한 곳만이 외국자본의 참여없이 운영되고 있다.

멕시코에서도 몇년전부터 외국인이 은행을 소유하는 데 대한 반감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만해도 은행등 금융기관에 활기가 넘치는
것처럼 보이던 태국에서도 지금은 외국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혈안이 돼있다.

지구 반대편인 동유럽에서도 외국인의 은행소유는 일상적인 일이 돼 있다.

금융권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자금이 필요한 산업계에서도 외국으로부터의 자본유입은 흔한 일이다.

외국기업과 합작해 회사를 만들거나 경영권을 양도하는 일등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세계 자본시장에서 일고 있는 또하나의 새로운 변화는 "통합"이다.

그렇지 않아도 거대한 금융기관들이 또다른 거대한 기관과 합쳐 공룡을
만든다.

통합은 그만큼 덩치와 파워가 커진다는 뜻이다.

뒤집어 말하면 경제를 다루는 각국 정부의 파워는 그만큼 초라해진다는
것이다.

국가 내부의 상황에 따라 경제논리에 입각한 변화가 아니라 외부적인
압력에 의한 변화가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 돼 버렸다.

각국 정부로서는 곤혹스러운 일이지만 국제 상품과 서비스 교역시장에
참여하려 한다면 이렇게 복잡해진 금융시장에도 발을 들여놓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금융과 무역 투자가 함께 움직인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위기와 기회가 병존하고 있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좀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핫머니의 유입을 규제하려는 최소한의 필사적 노력에 대해 자유시장론이나
효과에 대한 회의론을 들먹이며 눈살을 찌푸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칠레와 같은 몇몇 나라에서는 은행간 거래에서 신중을 기할 수 있도록
자금흐름을 제한하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이는 온당한 처사다.

이미 세계금융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듯이
아시아에서 발생한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다른 주요 국제금융기관들의 역할에 대한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같다.

투기자본은 새로운 국제금융질서에 따라 변화된 형태로 움직이고 있다.

때로는 뒤로 물러서서 스스로를 평가하기도 한다.

투기자본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몇년 전까지 만해도 시장에 혼란이 발생하면 이머징 마켓의 국가들은
지속적이고 강한 성장에 방해를 받았고 따라서 시장을 개방한다든가
자유화해야 한다는 생각에 반감을 가졌다.

그러나 오늘날 그같은 생각은 경제적 긴장 뿐아니라 정치적 투쟁까지도
유발시킬 수 있다.

사실 이머징 마켓 국가들의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최근들어 자본에 대해 개방된 시장은 성장을 뒷받침할 것이라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

해외 직접투자를 수용한 게 단적인 예다.

오랜 세월 기술이나 경영이나 모든 면에서 이들이 가졌던 생각은
상호호혜였다.

따라서 많은 투자가 이뤄졌다.

위기가 국제금융시장을 엄습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외화도입은 투자를 촉발한다.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수출도 늘린다.

그리고 높은 성장을 유지시키는 요인이 된다.

강력한 외환제도는 인플레를 억제한다.

은행이나 금융기관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많이 확보할 수 있다.

이같은 성공은 초기 투자자들에게 좀더 많은 돈을 집어 넣도록 한다.

문제는 외국에서 자금이 자유롭게 들어올 경우 은행들이 마구잡이로
끌어다 쓴다는 점이다.

곧 적정 수요를 초과하게 된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런 자금은 불요불급한 데 투입된다.

이같은 상황이라면 부동산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이는 국가내부나 외부에서는 물론이고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성에
심각한 문제를 만들게 된다.

이런 문제들은 일정 시점까지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지만 어느땐가
순식간에 문제로 인식된다.

자본의 흐름은 갑작스레 둔화되며 심한 경우 아예 멈추는 사례도 생긴다.

외환보유고는 말라가게 되고 환율이 급등하며 인플레 위협은 높아진다.

금리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위기는 이렇게 발생한다.

우리는 이런 사례를 동아시아와 러시아, 그리고 최근에는 중남미에서도
보고 있다.

이것이 국제 금융불안이 전염병처럼 번지게 되는 메카니즘이다.

이같은 패턴은 너무도 익숙한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이런 상황들이 거시경제정책을 잘못 운용해서 발생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MF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은 분명 과거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IMF는 태국 한국 등 동아시아에서 이런 전통적 방법에 입각한 거시정책
프로그램들을 강요했다.

원인은 다른 곳에 있는데 처방은 낡은 방식을 그대로 원용했다.

현재의 상황은 대단히 복잡하다.

세계 금융시스템이 작동하는 "현실"이 있는 한편에는 거시적 원리와
지침들이 마구 뒤엉켜있다.

이런 갭이 IMF의 금융지원이 충분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IMF나 기타 다른 기관들은 단순한 접근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더늦기 전에 인식해야 한다.

IMF등 국제기구의 내부 개혁이 우선적으로 돼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여기에도 정치적 또는 경제적인 위험은 따른다.

선택의 문제가 남아있을 뿐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