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계서는 지난주 이곳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IBRD) 연차총회에 참석했습니다.

미셸 캉드시 IMF총재, 로버트 루빈 미국재무장관등 거물들이 한국경제의
빠른 안정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입니다.

장관께서 지적했듯이 이곳 사람들은 한국경제가 환란을 당한 이후 크게
세가지가 달라졌다고들 합니다.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위기전보다 크게 늘어나 4백30억달러가 되었고, 금리
또한 위기전 보다 낮은 수준으로 떨여졌으며 경상수지 흑자행진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궁지에 몰린 IMF와 미국은 무언가 내세울만한 사례를 찾고 있었습니다.

속내용이야 어찌됐건 겉으로 나타난 한국경제의 거시경제지표가 이들의
정치적 목적에 딱 맞아 떨어졌다고나 해야할까요.

그렇건 말건 대외신용 회복에 진력해온 우리로서는 일단 성공한 것
아니냐고 할 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방심이야말로 우리를 위기로 몰아넣은 주요 요인이고
또 우리의 가장 큰 맹점이기도 합니다.

아직까지도 우리의 생사를 가르는 관건은 국내은행들의 만기연장(roll
over) 능력입니다.

분위기가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아직 미지수입니다.

만기연장 여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외국인들은 우리가 내세우는 허수에
현혹되지 않습니다.

거물정치인들이 무슨 소리를 하건 속내용이 겉을 받혀주지 못하는 한
이들에겐 의미없는 숫자의 나열일 뿐입니다.

이들의 질문은 실질적입니다.

한국이 내세우는 외환보유고 4백30억달러에서 생기는 이자는 연평균
얼마나 됩니까.

또 4백30억 달러는 어디서 생긴 돈입니까.

수출대금입니까 아니면 외국에서 빌려온 돈입니까.

하기야 돈에 꼬리표가 달려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 돈이 수출하고 받은
돈이건 빌려온 돈이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만한 돈을 빌려쓰자면 얼마의 이자를 주어야 하는가 하는 한계비용
(marginal cost)만 제대로 알면 되니까요.

산업은행도 요즘 10%의 웃돈(spread)을 얹어 주어야 한다니까 우리의
조달금리는 간단히 연15%가 넘어갑니다.

반면에 4백30억달러에 달하는 예치금에서 생기는 이자는 연6%도 채
안될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4백30억달러를 깔고 앉아 고스란히 손해보는 연간손실은 쉽게
계산됩니다.

외환보유고가 또 다른 환란에 대비하기 위한 예비적 현금 (precautionary
cash)이라는 것은 모두 인정합니다.

그러나 1달러가 아쉬운 판에 보험료 치고 너무 비싼 보험료라고 생각해보신
적은 없습니까.

하기야 재경부 간부 중에는 외환보유고를 1천억달러까지 늘려야한다고
주장한 사람까지 있었으니까 이정도의 보험료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시중금리가 떨어진 이면은 또 어떻습니까.

그동안 참으로 많은 회사가 부도로 쓰러졌습니다.

이제 기업들의 의욕적인 시설투자는 옛말이 됐습니다.

정작 돈을 써야 할 사람들이 없어진 것입니다.

은행원 또한 선뜻 돈을 내주려하지 않습니다.

돈이 은행금고에서 잠자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같은 공백이 빚는 것은 금리하락 밖에 없습니다.

경상수지는 어떻습니까.

수출이 잘되어서 입니까.

아닙니다.

줄어든 수입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온당합니다.

수입은 이제 줄어든 게 아니라 아예 없어졌다는 게 한 무역업자의
말입니다.

이런 비정상적인 무역상황에서 발생하는 경상수지흑자가 얼마나 경제적으로
의미있는 숫자라고 보십니까.

이제 장관께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나라경제를 빨리 안정궤도에 올려놓으려면 온 나라가 순진하다 싶을
정도로 정직해져야 합니다.

이제 "눈가리고 아웅"은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정작 상대해야 할 실무자들은 우리자신보다 우리를 더 잘 압니다.

우리가 그것을 인정할 때에야 위기를 푸는 열쇠가 생길 것입니다.

< 워싱턴=양봉진 특파원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