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단일어 민족의 행복 .. 이익섭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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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섭 < 국립국어연구원 원장 islee@korea.com >
얼마전 일본 국어연구소 일행이 우리 연구원을 다녀갔다.
세계 각국에 일본어가 어느정도 보급돼 있는지를 조사하면서 일본어에 대한
외국인들의 태도도 함께 조사하는 중이라고 했다.
국어도 이제 세계 여러 곳에 퍼져 있으므로 우리도 할 법한 연구를 이들이
먼저 시작했구나 싶으면서도 교포 후손이 아닌 순수 외국인을 놓고 보았을
때 일본어의 보급률은 우리의 상대가 되지 않아 그런 사업을 개시한 그들이
부러웠다.
그런데 그 부러움은 이내 당혹스러움으로 바뀌었다.
동남아 중에서는 한국을 비중이 가장 큰 나라로 다루어 첫 조사지로 택했다
해서 퍼뜩 긴장됐다.
그리고 물었다.
과거에 뿌리박았던 일본어의 잔재가 어느정도인지도 조사하냐고.
그렇다고 대답했다.
난감한 심사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한참이나 혼란스러웠다.
꽤 애써 왔지만 일본어 잔재가 여기저기 깊게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현장을 우리는 수시로 목격한다.
어디 그뿐인가.
잔재가 아니라 온전한 모습으로 일본어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또 얼마인가.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가.
수치스러운 식민지 생활의 흔적이라 감추겠다는 생각을 그 누가 하는가.
어떻게 됐든 배우기 어려운 외국어 하나를 습득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지 않는가.
번역된 것보다 원서가 읽기 쉽다고 일본어판을 사 읽는 분들조차 있지
않은가.
어느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조사했다는데 이 정도의 실태는 쉽게 캐냈을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쾌재를 부를까를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천만다행인 것은 그 일본어 없이도 오늘날 우리는 조금도
불편없이 언어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 어느 식민지도 제 나라 말을 쓴다고 벌을 받거나, 제 나라 말로 된
이름을 못쓰도록 강요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철저히 우리말을 잊도록 강요당했다.
얼마전 어느 좌담회의 사회를 본 일이 있는데 그 참석자들의 증언도 한결
같았다.
집에서 조선말 한 사람 손들라는 조사를 쉬지 않고 했다는 것이다.
세상에 집에 가서 가족끼리 얘기할 때에도 제 나라 말을 못쓰게 한 횡포가
어디 또 있었겠는가.
그렇게 우리는 일본어 세상에서 살았다.
그걸 생각하면 우리는 지금쯤 일본어 없이는 학교 교육도 시키기 어려워야
하고, 책도 내기 어려워야 하고, 관공서 일도 하기 어려워야 한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다.
이것은 흔히 가볍게 생각하지만 사실 기적과 같은 일이요, 또 깊이깊이
감사해야 할 일이다.
인도가 독립후 영어를 공용어로 인정하지 않았다가 영어 없이는 못살도록
그 뿌리가 깊게 박힌 것을 알고는 그 후 결국 영어도 공용어의 하나로 승격
시킨 일을 상기하면 정말 그렇다.
어디 인도뿐인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영어 아니면 불어 등을 공용어로 쓰고 있고,
동남아의 필리핀이나 말레이시아도 사정이 비슷하지 않은가.
한 언어학사전을 보면 두개 이상의 언어를 공용어로 채택해 쓰고 있는 나라
이름들이 총망라돼 있다.
대개 잘 안알려진 나라들이요, 불행한 과거를 가진 나라들이다.
그런데 근자에 그 명단에 우리나라 이름도 끼였으면 하는 자들이 있어
세상을 어지럽힌 일이 있었다.
복에 겨우면 좀 불행해지고 싶은 심정이 사람들에게는 있는 것일까.
그렇다 해도 너무 어이없는 일이 아닌가.
불행했던 나라들은 이제 제 나라 말을 찾고, 제 나라 말로 된 교과서로
교육을 시키는 일에 정성을 쏟는다.
나라에 따라서는 아직 중학교 정도만 돼도 여전히 영어로 된 교과서로
공부하는 형편이지만, 이제 노력이 쌓이면 중학교는 물론 대학교에서도
제 나라 말로 된 교과서로, 제 나라 말로 하는 설명을 들으며 공부하게 될
것이다.
불행한 사람들은 제 것을 찾아 이토록 고생을 하는데 우리는 제 것을
버리자고 야단들이란 말인가.
벌써 그토록 복에 겨웠단 말인가.
외국에 오래 살다 온 사람들이 자주 하는 얘기가 있다.
이리 보아도 같은 얼굴, 저리 보아도 같은 얼굴, 이쪽에서도 한국말,
저쪽에서도 한국말, 그게 그리도 신통하고 그리도 감격스럽다고.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9일자 ).
얼마전 일본 국어연구소 일행이 우리 연구원을 다녀갔다.
세계 각국에 일본어가 어느정도 보급돼 있는지를 조사하면서 일본어에 대한
외국인들의 태도도 함께 조사하는 중이라고 했다.
국어도 이제 세계 여러 곳에 퍼져 있으므로 우리도 할 법한 연구를 이들이
먼저 시작했구나 싶으면서도 교포 후손이 아닌 순수 외국인을 놓고 보았을
때 일본어의 보급률은 우리의 상대가 되지 않아 그런 사업을 개시한 그들이
부러웠다.
그런데 그 부러움은 이내 당혹스러움으로 바뀌었다.
동남아 중에서는 한국을 비중이 가장 큰 나라로 다루어 첫 조사지로 택했다
해서 퍼뜩 긴장됐다.
그리고 물었다.
과거에 뿌리박았던 일본어의 잔재가 어느정도인지도 조사하냐고.
그렇다고 대답했다.
난감한 심사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한참이나 혼란스러웠다.
꽤 애써 왔지만 일본어 잔재가 여기저기 깊게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현장을 우리는 수시로 목격한다.
어디 그뿐인가.
잔재가 아니라 온전한 모습으로 일본어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또 얼마인가.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가.
수치스러운 식민지 생활의 흔적이라 감추겠다는 생각을 그 누가 하는가.
어떻게 됐든 배우기 어려운 외국어 하나를 습득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지 않는가.
번역된 것보다 원서가 읽기 쉽다고 일본어판을 사 읽는 분들조차 있지
않은가.
어느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조사했다는데 이 정도의 실태는 쉽게 캐냈을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쾌재를 부를까를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천만다행인 것은 그 일본어 없이도 오늘날 우리는 조금도
불편없이 언어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 어느 식민지도 제 나라 말을 쓴다고 벌을 받거나, 제 나라 말로 된
이름을 못쓰도록 강요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철저히 우리말을 잊도록 강요당했다.
얼마전 어느 좌담회의 사회를 본 일이 있는데 그 참석자들의 증언도 한결
같았다.
집에서 조선말 한 사람 손들라는 조사를 쉬지 않고 했다는 것이다.
세상에 집에 가서 가족끼리 얘기할 때에도 제 나라 말을 못쓰게 한 횡포가
어디 또 있었겠는가.
그렇게 우리는 일본어 세상에서 살았다.
그걸 생각하면 우리는 지금쯤 일본어 없이는 학교 교육도 시키기 어려워야
하고, 책도 내기 어려워야 하고, 관공서 일도 하기 어려워야 한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다.
이것은 흔히 가볍게 생각하지만 사실 기적과 같은 일이요, 또 깊이깊이
감사해야 할 일이다.
인도가 독립후 영어를 공용어로 인정하지 않았다가 영어 없이는 못살도록
그 뿌리가 깊게 박힌 것을 알고는 그 후 결국 영어도 공용어의 하나로 승격
시킨 일을 상기하면 정말 그렇다.
어디 인도뿐인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영어 아니면 불어 등을 공용어로 쓰고 있고,
동남아의 필리핀이나 말레이시아도 사정이 비슷하지 않은가.
한 언어학사전을 보면 두개 이상의 언어를 공용어로 채택해 쓰고 있는 나라
이름들이 총망라돼 있다.
대개 잘 안알려진 나라들이요, 불행한 과거를 가진 나라들이다.
그런데 근자에 그 명단에 우리나라 이름도 끼였으면 하는 자들이 있어
세상을 어지럽힌 일이 있었다.
복에 겨우면 좀 불행해지고 싶은 심정이 사람들에게는 있는 것일까.
그렇다 해도 너무 어이없는 일이 아닌가.
불행했던 나라들은 이제 제 나라 말을 찾고, 제 나라 말로 된 교과서로
교육을 시키는 일에 정성을 쏟는다.
나라에 따라서는 아직 중학교 정도만 돼도 여전히 영어로 된 교과서로
공부하는 형편이지만, 이제 노력이 쌓이면 중학교는 물론 대학교에서도
제 나라 말로 된 교과서로, 제 나라 말로 하는 설명을 들으며 공부하게 될
것이다.
불행한 사람들은 제 것을 찾아 이토록 고생을 하는데 우리는 제 것을
버리자고 야단들이란 말인가.
벌써 그토록 복에 겨웠단 말인가.
외국에 오래 살다 온 사람들이 자주 하는 얘기가 있다.
이리 보아도 같은 얼굴, 저리 보아도 같은 얼굴, 이쪽에서도 한국말,
저쪽에서도 한국말, 그게 그리도 신통하고 그리도 감격스럽다고.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