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봉 < 한국화학연구소장 sbrhee@pado.krict.re.kr >

세계 제2차대전에서 미국의 승리가 확실해지던 1944년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는 전시 기술개발 연구의 총책임자이던 베니바 부시 박사에게
평화시 과학기술정책 수립을 지시했다.

그러자 부시 박사는 "과학, 끝없는 전선"(Science, The Endless Frontier)
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해 루스벨트에게 보고했다.

이후 이 보고서는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 각국의 과학기술정책 수립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부시 박사는 보고서에서 기초연구가 응용성을 전제로 할 경우 "창의성"을
잃게 되므로 기초연구와 응용연구를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기초연구를 토대로 응용연구와 개발연구가 이어지는 일방통행식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기초연구만 잘되면 응용이나 개발연구는 쉽게 성공해 국가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게 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부시 박사의 보고서에 따라 기초연구분야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과학
기술정책이 수립되었다.

그러자 자연히 기초연구분야에 많은 인재들이 모이게 됐고 과학기술자들이
응용이나 개발연구보다 기초연구 분야를 더 선호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부시 박사는 기초연구가 순수기초연구와 응용성을 염두해 둔
목적기초연구로 구분된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또한 기초연구 결과가 응용연구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지만 반대로 응용연구
중에서 기초원리와 이론을 발견한 예도 적지 않다는 점을 부시 박사는 간과
했다.

결국 과학기술 연구의 현실은 부시 박사의 주장대로 일방통행식이 아니라
기초와 응용, 개발연구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양방통행식인 것이다.

이제는 부시 박사의 일방통행식 과학기술정책 보고서는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아직도 부시 박사와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세계 도처에서
과학기술정책 수립에 영향을 주고 있다.

기초와 응용, 개발연구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한 과학기술정책이 아쉽다.

sbrhee@pado.krict.re.kr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