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발표한 한국문학의 거목이자, 시류에 야합하지 않은 구도자적 삶의
표상으로 존경받아 왔다.
"청록파"의 마지막 생존 시인었던 그는 "자연"에서 발견되는 "생명"에 대한
외경감과 인간실존의 문제에 초점을 맞춰 시작활동을 해 왔다.
그의 시세계는 "청록집"(46년), "해"(49년), "오도"(53년), "수석열전"
(73년)을 기점으로 해 작은 변화를 보였다.
39년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장"을 통해 문단에 데뷔한 그는 박목월 조지훈과
함께 "청록집"을 내기까지 자연친화의 경지를 추구했다.
자연에서 발견하는 순수한 생명감각과 법열의 세계가 주제였다.
이는 관조적이고 기교적으로 자연을 다루었던 당시의 기존시단에 충격을
던져주었다.
첫 개인시집인 "해"를 발표하면서 그가 보였던 자연과 생명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더욱 고조됐다.
반복적이고 점층적인 시어와 리듬을 통해 자연.생명에 대한 관심과 이상향에
의 갈망을 한층 강하게 표출했다.
시집 "오도"를 발표하면서부터는 개인적 종교관(기독교)을 다듬어 냈다.
종교적 색채가 짙은 작품을 주로 발표하며 종교와 문학의 융화를 시도했다.
이 시기는 강한 민족의식에 기반하여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에 저항하는
등 대쪽같이 강직한 의식의 세계를 드러냈다.
한일협정때에는 시론 "한일협정, 대학, 대학교수"를 써 대학사회가 맞서
일어나라고 촉구했다.
또 "오적사건 감정서"를 통해 김지하의 담시 "오적"을 옹호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적 색채는 두드러지고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시는 많이 남기지 않았다.
"수석열전"시기는 인간실존에 대한 문제에의 침잠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 수석을 수집하면서 "돌의 미학"을 노래했다.
돌이 갖고 있는 견고한 의지와 침묵의 깊은 세계를 들여다보면서 인간실존에
대한 사색의 깊이를 더했다.
수석에 대한 그의 관심은 매우 커 "돌의 시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수석과 관련된 시만해도 4백여편에 이른다.
자연과 생명, 그리고 종교와 실존에 대한 그의 시심은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74세였던 지난 90년에 신작시집 "빙벽을 깬다"를 펴낼 만큼 시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시인 김춘수씨는 "혜산(박시인의 호)은 독실한 기독교인 답게 관념성과
종료적 색채가 강한 시를 남겼다"며 "외모에서 보듯 평생을 학처럼 깨끗이
살았다"고 박시인의 마지막 길을 애도했다.
< 김재일 기자 Kjil@ >
[ 연보 ]
<>1916 경기도 안성 출생, 호 혜산
<>1939 "향현" "묘지송" "낙엽송" 등으로 "문장"데뷔
<>1946 조지훈 박목월과 시집 "청록집"발표
<>1949 시집 "해"발표
<>1953 시집 "오도"발표
<>1955 연세대 전임강사
<>1956 아시아 자유문학상 수상
<>1962 시집 "거미와 성좌"발표
<>1973 시집 "수석열전"발표
<>1976 대한민국 예술원상
<>1981 연세대교수 정년퇴직
<>1981 단국대 초빙교수
<>1984 "박두진문학전집"출간
<>1986 추계예술대 전임대우교수
<>1996 추계예술대 전임대우교수 퇴임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