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금융부터 살려라..박윤식 <조지워싱턴대/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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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 시작된 외환 위기가 최근 러시아와 중남미로 번지는 과정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서방 금융기관들의 채권 회수를 돕기 위한 종이
호랑이에 불과했음이 명확해진 가운데 개도국들 사이에서는 반서방-반시장
경제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또 상당수 개도국들에서 경제 위기가 정치적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불붙고 있는 소요 사태가 한국에서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정책 당국자들은 이런 현실을 너무 낙관하고 있는 것
같다.
일선 기업인들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느끼고 있는 반면 위정자들은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인식의 차이(perception gap)가 커도 너무 크다.
올해 한국의 GDP는 7~10% 이상 후퇴할 전망이다.
일부에서는 종합주가지수가 200선으로 폭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무엇보다도 위기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위기의 본질은 금융이 마비돼 있다는 점이다.
불량 채권이 1백조원을 넘고 은행들은 국제결제은행(BIS)의 자기자본비율
(8%)규정에 묶여 여신 업무를 사실상 중단한지 1년 가까이 흘렀다.
종금 투신 보험 보증보험 등 금융기관들이 모조리 고사 상태에 빠져 있다.
이로 인한 금융 공황, 신용 경색이 실물 경제의 기반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이런 식의 금융 공황 앞에서는 미국의 1류 기업이라 한들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다.
한국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금융 경색을 푸는 일이다.
이른바 "빅딜" 등 구조조정 작업은 부차적인 문제다.
정부는 지금이 전시상황이나 다를바 없다고 생각하고 금융 공황부터 해결
해야 한다.
첫째 정부가 불량 채권을 과감하게 사들여야 한다.
1백조원에 달하는 부실 채권을 성업공사의 25조원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정부 개입 규모를 75조원 이상으로 늘리고 지난 80년대 미국의 RTC와 같은
한시적 기구를 설립해 직접 국채를 발행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75조원의 국채를 발행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
멕시코는 지난 95년 외환위기 당시 7백억달러의 국채를 발행했다.
이를 현재의 원화 환율로 환산하면 1백조원이 넘는다.
당시 멕시코의 GDP는 한국의 4분의3에 불과했다.
국채는 당장의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제로쿠폰 방식을 채택해야
할 것이다.
제로쿠폰 채권은 원금은 물론 이자도 만기에 가서 상환하는 방식이다.
만기는 7~10년 정도로 여유있게 하는 게 좋다.
어차피 한국도 채권시장을 육성해야 한다.
둘째 정부가 은행들의 증자에 과감하게 참여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은행들의 자기자본 비율을 12% 정도로 올려줘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은행들을 회생시키면 그 과실은 정부에도 돌아올 것이다.
미국 연방정부는 크라이슬러자동차의 경영 위기때 주식을 담보로 채무
보증을 선 전례가 있다.
이후 크라이슬러가 회생하자 연방정부는 예상치 않았던 큰 수입을 챙긴 바
있다.
셋째 회사채 시장을 시급히 활성화해야 한다.
5대 그룹이 회사채 시장을 독식토록 해서는 안된다.
보증사채를 다시 발행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증보험사에 과감한 증자조치를
해줘야 한다.
지금은 국가 존망의 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인플레 억제니, 긴축재정이니 운운하는 것은 한가로운 얘기일
뿐이다.
앞으로 2~3년은 준전시체제로 돌입해야 한다.
결코 시장경제를 파괴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정부가 책임을 지고 과감히 개입해서 우선 시장경제부터 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빅딜 같은 주변적인 문제에 국력을 소진하고 도지사들이 외자를
유치하겠다고 너도 나도 미국에 오는 것은 금쪽같은 외화와 시간의 낭비일
뿐이다.
지금은 정부가 금융 문제에 제1의, 아니 유일의 초점을 맞춰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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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박 교수가 9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의 한식 연회장인
팰리세이디엄에서 미 한국상공회의소(회장 김영만)주최로 열린 "경제 위기와
한국 기업의 대응전략"세미나에서 발표한 특강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1일자 ).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서방 금융기관들의 채권 회수를 돕기 위한 종이
호랑이에 불과했음이 명확해진 가운데 개도국들 사이에서는 반서방-반시장
경제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또 상당수 개도국들에서 경제 위기가 정치적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불붙고 있는 소요 사태가 한국에서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정책 당국자들은 이런 현실을 너무 낙관하고 있는 것
같다.
일선 기업인들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느끼고 있는 반면 위정자들은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인식의 차이(perception gap)가 커도 너무 크다.
올해 한국의 GDP는 7~10% 이상 후퇴할 전망이다.
일부에서는 종합주가지수가 200선으로 폭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무엇보다도 위기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위기의 본질은 금융이 마비돼 있다는 점이다.
불량 채권이 1백조원을 넘고 은행들은 국제결제은행(BIS)의 자기자본비율
(8%)규정에 묶여 여신 업무를 사실상 중단한지 1년 가까이 흘렀다.
종금 투신 보험 보증보험 등 금융기관들이 모조리 고사 상태에 빠져 있다.
이로 인한 금융 공황, 신용 경색이 실물 경제의 기반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이런 식의 금융 공황 앞에서는 미국의 1류 기업이라 한들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다.
한국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금융 경색을 푸는 일이다.
이른바 "빅딜" 등 구조조정 작업은 부차적인 문제다.
정부는 지금이 전시상황이나 다를바 없다고 생각하고 금융 공황부터 해결
해야 한다.
첫째 정부가 불량 채권을 과감하게 사들여야 한다.
1백조원에 달하는 부실 채권을 성업공사의 25조원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정부 개입 규모를 75조원 이상으로 늘리고 지난 80년대 미국의 RTC와 같은
한시적 기구를 설립해 직접 국채를 발행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75조원의 국채를 발행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
멕시코는 지난 95년 외환위기 당시 7백억달러의 국채를 발행했다.
이를 현재의 원화 환율로 환산하면 1백조원이 넘는다.
당시 멕시코의 GDP는 한국의 4분의3에 불과했다.
국채는 당장의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제로쿠폰 방식을 채택해야
할 것이다.
제로쿠폰 채권은 원금은 물론 이자도 만기에 가서 상환하는 방식이다.
만기는 7~10년 정도로 여유있게 하는 게 좋다.
어차피 한국도 채권시장을 육성해야 한다.
둘째 정부가 은행들의 증자에 과감하게 참여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은행들의 자기자본 비율을 12% 정도로 올려줘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은행들을 회생시키면 그 과실은 정부에도 돌아올 것이다.
미국 연방정부는 크라이슬러자동차의 경영 위기때 주식을 담보로 채무
보증을 선 전례가 있다.
이후 크라이슬러가 회생하자 연방정부는 예상치 않았던 큰 수입을 챙긴 바
있다.
셋째 회사채 시장을 시급히 활성화해야 한다.
5대 그룹이 회사채 시장을 독식토록 해서는 안된다.
보증사채를 다시 발행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증보험사에 과감한 증자조치를
해줘야 한다.
지금은 국가 존망의 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인플레 억제니, 긴축재정이니 운운하는 것은 한가로운 얘기일
뿐이다.
앞으로 2~3년은 준전시체제로 돌입해야 한다.
결코 시장경제를 파괴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정부가 책임을 지고 과감히 개입해서 우선 시장경제부터 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빅딜 같은 주변적인 문제에 국력을 소진하고 도지사들이 외자를
유치하겠다고 너도 나도 미국에 오는 것은 금쪽같은 외화와 시간의 낭비일
뿐이다.
지금은 정부가 금융 문제에 제1의, 아니 유일의 초점을 맞춰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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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박 교수가 9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의 한식 연회장인
팰리세이디엄에서 미 한국상공회의소(회장 김영만)주최로 열린 "경제 위기와
한국 기업의 대응전략"세미나에서 발표한 특강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