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구조조정의 전기를 마련했다. 하지만 합의내용을 좀더 구체화하고
반드시 실천해 달라"

5대 그룹이 합의한 사업구조조정에 대해 정부가 공식적인 답변을 했다.

정부는 9일 열린 제 3차 정.재계 간담회에서 업종별로 구체적인 자구노력
과 빠듯한 후속 일정을 제시했다.

기업들이 소극적으로 나오면 여신을 중단하겠다는 엄포도 빼놓지 않았다.

재계 합의를 반드시 실현해 내기 위한 째찍을 든 셈이다.

정부가 재계의 자율적인 합의사항을 존중하면서도 째찍을 빼놓지 않은 것은
금융및 세제지원에 대한 명분 때문으로 해석된다.

사업구조조정이 성공하려면 대출금출자전환이나 신규자금지원 등이 필요
하다.

정부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주나 종업원들이 각각 경영권포기나 해고 등의 형태로 손실을
부담하지 않고 이같은 지원을 하기 어렵다는게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는 이날 재계에 던진 요구사항을 이미 며칠전에 만들어 놓았다.

이날 회의는 요구사항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자리였다.

5대그룹은 정부의 재촉에 따라 이달안에 빅딜 대상기업들의 실질적인
경영주체를 정하고 자구노력 계획을짜야 하는 쉽지 않은 "숙제"을 안게 됐다.

<> 강도 높아진 정부요구 =정부는 이날 간담회에서 "5대그룹의 구조조정
합의는 대기업 경쟁력 강화 작업의 출발점이지 결코 종착점이 아니다"고
못박았다.

앞으로 보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정부는 구조조정 대상 단일법인의 책임경영주체와 자구노력을 강한
톤으로 요구했다.

경영에 실질적인 책임을 질 주체를 확정하되 그것도 조속히 하라고 강조
했다.

자구노력 요구에선 "강도 높은"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과잉시설의 가동중단이나 매각처분, 관리조직 등 전반적인 인력정비, 향후
투자조정, 과다부채비율 감축과 외자유치 유상증자 등 재무구조 개선, 감자
(자본감축)와 같은 기존주주의 손실부담 계획 등은 자구계획에 꼭 넣으라고
예시했다.

반도체의 경우 "6인치 웨이퍼 설비"의 처리방안을 강구하라고 적시하는 등
그 어느때보다 구체적이고 강한 자구노력을 주문하고 있다.

"업계자율"이라던 정부의 빅딜원칙이 "적극 개입"으로 선회한게 아니냐는
저적이 나올 정도다.

<> 빅딜안에 대한 불만 =정부가 이날 간담회에서 재계를 압박한 것은 5대
그룹이 발표한 빅딜안에 대한 불만과 대기업 구조조정의 의지를 동시에
보여 주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진작부터 5대그룹 빅딜안에 대해 탐탁치 않아 했다.

특히 대부분의 업종이 확실한 사업맞교환(빅딜)보다 어정쩡한 컨소시엄이나
합작법인 등으로 결론난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서로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고 합작법인을
만들어 공동 경영하겠다는 것은 나중에 상황을 봐서 다시 해산할 수도
있다는 의미 아니냐"며 의구심을 나타냈다.

정부는 또 재계가 분명한 경영주체 등도 정하지 않고 금융 세제지원 등
손만 벌리고 있다는 데도 비판적이다.

청와대 관계자가 "주인도 확실치 않은 회사에 정부가 지원을 할순 없지
않느냐"고 지적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결국 정부는 이번 빅딜안을 봐서는 5대그룹의 확실한 구조조정 의지를
믿을 수 없으니 보다 가시적인 "증거"를 보여달라고 재계에 요구한 것이다.

< 차병석 기자 chabs@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