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모라토리엄 충격이 본격화하면서 개도국 채권들에 투자되던
자금들이 일제히 미국채등 선진국 채권들로 빠져나가고 있다.

개도국 채권들이 국제금융시장에서 축출되고 이 자금들이 선진국으로
몰려가고 있는 것이다.

국제 금융자산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본격화하고 이는 개도국들의
자금조달에 심각한 2차 충격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미국채 30년물(TB)은 연일 사상 최고 가격을 기록하는 반면 브래디 본드등
개도국 채권은 폭락세를 거듭하고 있다.

이같은 자금도피 현상은 개도국들에 다시 극심한 신용경색(credit crunch)
을 일으키면서 금융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수 밖에 없다.

일부 분석가들은 지난 30년 대공황 당시에도 미국채가 14년씩 장기적인
강세를 보였던 적이 있다면서 자칫 당시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미국채(TB) 30년물의 경우 26일 뉴욕증권시장에서 연5.417%의 수익율을
기록해 종가기준으로 지난 77년 이 채권이 발행된 이후 최고수준을 기록했다.

수익율이 떨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이채권을 사려는 투자자들이 많아
가격이 올랐다는 것을 뜻한다.

가격으로 환산하면 1천달러당 1.5625달러나 오른 급등세였다.

미 TB는 지난 4월만 하더라도 수익율이 6.1%선을 기록했으나 이후 줄곧
하락세를 계속했고 러시아 사태가 터진 이후에는 투자자들의 열광적인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초강세를 기록하는 중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결정하는 연방기금금리(우리나라의 한은
환매금리, 하루짜리)는 현재 연 5.5%이다.

따라서 30년물 국채가 하루짜지 콜금리보다 낯은 기현상이 나타나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장단기 금리의 역전은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FRB가
조만간 금리를 인하할지도 모른다는 전망을 내고 있다.

미국외에 독일과 일본 역시 국채가격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독일정부가 발행한 10년물 국채의 경우 지난 4월 연5.1%선에서 수직
하락세를 거듭해 최근에는 4.3%까지 떨어져있다.

그만큼 가격은 올라있다.

일본국채 역시 26일엔 10년물 국채가 연1.105%의 사상 최저수익율을
기록하는등 채권값이 강세를 보였다.

일본국채금리는 지난 1월엔 연1.81%였다.

이에반해 개도국 국채들은 파국적 하락세를 계속하고 있다.

베네주엘라 국채가 발행가의 50%미만으로 폭락한 것을 비롯해 멕시코
채권이 발행가의 75%선으로 폭락하는 등 투매적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 채권딜러는 "이런 양상은 처음있는 일"이라며 "뮤추얼 펀드등 거의
모든 투자기관들이 개도국 채권을 던져버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따라 미국채와 브래디본드(남미 외환위기국 채권)의 수익율 격차는
더욱 벌어져 이달 중순 이미 10%를 넘어섰고 26일에는 15%까지 갭이
벌어졌다.

개도국 정부와 기업들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이 수익율 갭만큼 금리를
더 물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선진국을 따라잡기는 고사하고 고금리 부담을 견대내지도 못할 것이라는
분석들이다.

미국 TB와의 개도국 채권간의 수익율 격차는 지난 94년말 멕시코 사태
당시 19%포인트를 넘어서기도 했으나 최근과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당시
기록을 간단히 넘어설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러시아 사태는 개도국들의 국제금융시장 접근을 점차 원천봉쇄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 정규재 기자 jkj@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