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있다.

루블화와 주가가 연일 수직하강하는 가운데 외환보유고는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러시아 정부는 단기외채에 이어 장기외채마저 제때 갚지 못하는 사태에
이르렀으며 물가도 폭등, 서민생활을 위협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속속 러시아를 이탈하고 있고 일부은행에서는 예금인출
사태가 벌어지는 등 패닉(공황)의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27일 루블화는 모스크바 은행간 외환거래소
(MICEX)의 개장과 동시에 첫 주문이 전날보다 10.9% 하락한 달러당
8.80루블에 나왔다.

이에 중앙은행은 황급히 모든 외환거래를 중단시켰고 거래가 중단되는
순간 은행들이 제시하는 환율은 달러당 11.0986까지 치솟았다.

러 중앙은행측은 달러뿐 아니라 모든 외환거래를 중단시킨 이유에 대해
"외환확보에 비상이 걸린 러시아 은행들이 무차별적으로 루블화를 투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날인 26일에는 중앙은행이 당초 계약돼 있던 달러매도 거래를
취소하자 은행들이 마르크화 매수로 몰려 루블화가 마르크화에 대해 69%나
폭락하기도 했다.

한편 러시아 정부는 지난 17일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때 포함시키지 않았던
장기부채에 대해서도 이날 만기분을 상환하지 못해 사실상 디폴트
(채무상환불능)상태에 들어갔다.

이와함께 물가폭등도 러시아를 위협하고 있다.

모스크바시 물가통계위원회는 27일 "루블화 평가절하 이후 커피, 담배
등 수입품 가격이 최고 45%까지 폭등했다"고 밝혔다.

<>서방 금융기관들의 반응=27일 모스크바발 외신들은 러시아 정부가
일부 장기외채를 상환하지 못했다는 소식과 함께 "지난 21일 현재 러시아의
외환보유고가 1백34억달러로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이와관련 영국의 신용평가기관 피치 IBCA는 "러시아가 1천4백억달러의
외채 전부에 대해 디폴트를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며 러시아 장기외채의
신용등급을 "B-"에서 "CCC"로 하향 조정했다.

서방 금융기관들은 특히 러시아 중앙은행이 전날 달러매도를 취소한데
이어 이날 금융기관간 외환거래를 전면금지시키자 "이제는 중앙은행
조차도 믿을 수 없게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또 최근의 러시아국채 상환조정방안으로 인해 러시아 금융기관들의
무더기 도산도 예상하고 있다.

1천5백여개에 달하는 러시아 은행의 경우 전체 자산의 40% 정도를 단기
국채에 투자해 놓은 상태여서 올연말께는 3백-8백개의 은행만 살아 남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미 업계 11위인 임페리얼 뱅크가 폐쇄됐다.

러시아 보험회사 연합회도 보험사들의 고객들에 대한 지불금이 15일분
밖에 남지 않아 파산상태에 빠졌다고 밝혔다.

<>국제지원대책 모색=러시아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도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러시아측에 신속한 시장안정화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미셸 캉드쉬 IMF총재는 26일 우크라이나에서 체르노미르딘 러시아총리와
긴급회담을 갖고 대책을 논의했다.

또 미국 정부도 다음달 초로 예정된 미.러 정상회담에 앞서 실무진을
급파, 러시아측과 경제대책 협의에 들어갔다.

하지만 선진 7개국(G7)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러시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회의를 열 계획은 없다"며 추가지원 계획이 없음을 시사했다.

더군다나 러시아내에서는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공산당이 옐친 대통령의
하야를 거듭 촉구하는 등 정치적 불안이 지속되고 있어 현정부가
국제사회와의 협조체제를 구축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

< 임혁 기자 limhyuc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