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기관과 기업들은 해외 차입을 아예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등 한국 채권값이 최근
폭락한 탓이다.

또 외평채 가격 급락으로 무디스 S&P(스탠더드앤드푸어스) 등 국제적
신용평가기관들이 한국의 평가등급을 더욱 낮출 것이란 우려까지 대두하고
있다.

물론 현대자동차 사태로 인한 대외신인도 하락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한 터에 발생한 한국 채권값 하락은 일파만파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 해외차입 길이 막혔다 =외평채 금리가 연 13%대까지 뛴 상황에서 국내
금융기관이나 기업들의 해외 차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해외 자금조달 금리가 국내 금리보다 높기 때문에 더이상 해외차입의
실익이 없다는 것.

실제로 산업은행만 봐도 해외에서 발행한 산업금융채권(10년만기) 금리는
지난 주말 13.8%에 달했다.

같은날 국내 산금채(3년만기) 금리는 12.2% 수준.

내외금리가 완전히 역전된 셈이다.

이에 따라 산업은행은 하반기중 8억달러 정도를 해외기채로 조달할 계획
이었으나 이를 보류했다.

또 성업공사도 하반기중 5억6천만달러 어치의 부실채권기금채권을 해외에서
발행할 예정이었으나 거의 포기 상태.

성업공사는 채권발행 주간사로 독일의 도이체방크를 선정하고 지난달
발행을 추진했지만 시장상황이 안좋아 미뤘었다.

이밖에 현대 삼성 등 민간기업들도 하반기 해외 채권발행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 만기외채 상환이 어렵게 된다 =기업들은 해외차입이 어려워지면 하반기
만기가 돌아오는 외채를 갚을 길이 막막해진다.

국내기업들의 단기외채 만기는 주로 10월이후에 몰려 있다.

실제로 국내기업들은 4.4분기중에만 44억4천만달러의 외화 빚을 갚아야
한다.

여기에 수출입을 위한 달러수요도 42억4천만달러에 달한다.

4.4분기 중에만 90억달러 정도의 외화가 필요한 셈이다.

신규 외화차입이 불가능해진 상태에서 만기연장도 안되면 기업들은 결국
이 돈을 국내에서 조달해야 한다.

그만큼 국내 외화수급에 압박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얘기다.

물론 기업들의 외화예금이 1백17억달러에 이르긴 한다.

하지만 이 돈을 모두 빚 갚는 데 쓸 수만은 없는 일이다.

<> 한국의 신용등급이 흔들린다 =외평채 가격은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의
단기적 신용도로 통한다.

정부가 발행한 채권인 만큼 국가 신인도의 잣대가 된다.

따라서 외평채 값의 급락은 한국의 신용평가에 곧바로 악영향을 미친다.

그렇지 않아도 무디스와 S&P 등은 오는 9월께 국가별 신용등급을 재조정할
예정.

우리로선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한국에 대해 무디스는 Bb+, S&P는 BA1으로 "투자부적격" 판정을 내린
상태다.

대우경제연구소 한상춘 국제경제팀장은 "외평채 값이 급락하는 등 한국의
신인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방법은 가용외환보유고를 충분히 쌓는 수 밖에
없다"며 "가용외환보유고가 5백50억달러는 넘어야 최악의 경우 원화가치를
방어할 수 있는 등 안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차병석 기자 chabs@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