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8월15일은 일년중 가장 마음이 무거운
날이라고 할수 있다.

이날이 한국엔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을 의미하고 일본에는 패전의 날을
뜻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말로 표현하는것이 어렵기는 하지만 되도록 이날은 한국에 있고 싶지 않은
날이다.

물론 그것은 한.일간의 과거 역사에 관계된 것이라고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사문제" "역사의 청산"이라고 할때 일본측의 역사인식에 반성을
촉구한다고 해도 한국측의 요구에 곧바로 응할수 없는 것이 있다.

일본과 한국에서는 역사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측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은 궤변이다"라는 견해가 제기될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렇지 않다.

한국의 역사인식은 유교적인 가치관에 근거를 두고 있어 역사를 선과 악으로
판단하고 권선징악적인 의식이 강하다.

그것을 "춘추의 의"라고 말한다.

그때문에 자기가 선하면 필연적으로 상대는 악하게 되기 쉬운 것이다.

이에 반해 같은 유교문화권에 속하는 일본에서는 조금 양상이 달라진다.

중앙집권적 사회체제였던 한국에서는 국가가 역사를 편찬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어 역사인식이 통일돼 있었다.

하지만 지방분권적인 일본사회에서는 국가권력이 약해 국가의 역사를
편찬하는 힘이 없었다.

사실 한국에서 국가사업으로 "삼국사기" "고려사" 등이 편찬되고
조선시대가 끝날 때까지 "조선왕조실록"이 편찬돼 왔던 것과 달리 일본에서는
8세기의 "일본서기"를 시작으로 10세기에 "신국사"의 편찬이 중단된 이래
정사의 편찬이 단절되고 있다.

한국은 군신제의 사회이고 일본은 봉건제에 가까운 체제였기 때문이다.

이같은 차이가 당연히 역사관에도 반영돼 있다.

오늘날 한국측으로부터 "역사의 청산"이라는 발언을 듣는 것도 그러한
과거의 전통을 이어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당연히 일본의 역사인식과 거리가 멀다.

일본측에서는 역사의 선악보다 "그것이 사실인가 아닌가"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인식도 관점을 바꿔서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