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독감은 미국과 무관한 일이 아니었다"

지난 4일 다우존스 지수가 2백29포인트나 급락한 것을 계기로 월가에
아시아 태풍 상륙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최근 몇 년간 승승장구를 지속해 온 미국주가가 동아시아의 경제위기로
발목을 잡히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화학 항공 등 아시아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의 2.4분기 중 영업성적이
크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그 여파가 곧바로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다.

지난 주 후반들어 주가가 조금 회복세를 보이기는 했지만 주식시장 이상
징후에 대한 경계심은 월가만이 아닌 미국 경제계 전체를 강타하고 있다.

주가가 미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특히 90년대 들어 지속돼 온 미국의 장기호황은 상당부분이 증시활황에
의존해 왔다는 게 정설이다.

"한 뼘의 월가(주식시장)가 거대한 대륙 전체를 먹여 살려 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현재 주식에 손대고 있는 미국인은 전체의 43%로 사상 최고수준을
보이고 있는 만큼 전혀 황당한 주장은 아니다.

지난해 미국인들이 쓴 소비지출의 3분의 1이 주가상승에 따른 투자자들의
"부의 효과(wealth effect)"에 힘입은 것이며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2가 소비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통계까지 감안하면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더구나 미국의 주식 투자자들은 주식시장에서 발생한 부에 대해 달러당
3-4센트의 비율로 소비를 늘려 왔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지난 8년간 미국 직장인들의 평균 임금 상승률이 1%선에 불과했던
사실을 고려하면 주식투자에 의한 "부의 효과"가 그 동안의 호황을
견인해 온 최대 요소임을 부인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렇게 미국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하며 고공비행을 해 온 주식시장이
단순한 "조정"이상의 급격한 "하락국면"으로 접어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지난 4일 사상 세번째로 큰 하락폭을 보인 것을 상서롭지 않은 신호로
받아들이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주가의 선행지표격인 성장-고용 등의 거시부문이 여전히 순항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가가 급락했던 것을 일시적인 조정 만으로 볼 수는 없다는
진단이다.

실제로 GM 분규 등 악재가 겹쳤던 지난 2.4분기 중 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라던 당초 예상과 달리 1%대의 "선전"을 보인 것으로 집계됐다.

올 하반기 중 성장률은 2-3%로 견실한 수준을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고용 쪽도 여전히 사정이 좋다.

7월중 실업률은 GM의 일부공장 폐쇄 조치에도 불구하고 4.5%의 완전고용
수준을 유지했다.

물가 역시 1%대로 안정세다.

결국 최근의 주가 불안은 국내가 아닌 국외 요인에 의한 것이고, 그것은
다름 아닌 "아시아 사태"라는 사실이 명확해진 셈이다.

그동안 "바다 건너 불" 정도로 가볍게 여겨왔던 아시아 경제위기가
미국경제의 발등을 위협하는 "현실"로 각인되기 시작한 것이다.

"주식 투자자들은 주가가 1달러 오를 경우 소비를 3-4센트 늘리지만
반대로 주가가 1달러 하락하면 소비를 4-4.5센트씩 줄여왔다"는 소비
경제학자들의 조사 결과까지 맞물리면서 아시아 사태가 결코 미국경제와
무관할 수 없다는 인식이 점차 전문가들 사이에 확산되는 모습이다.

"국경없는 글로벌 경제"를 앞서 주창해 온 미국인들이 주가불안이라는
현실적 위협에 직면하고서야 아시아 위기를 새롭게 인식하고 있는 요즘의
모습은 하나의 아이러니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