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기업및 금융기관의 부실을 정리하고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하여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에는 국내자본만으로는 충당하기 어려우므로 외국자본의 유치가
절실하나 국내경제 전반의 위기상황 하에서 당장 정상적인 외국자금이
들어오기는 어려우며 그 대안으로 벌처펀드(vulture fund)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벌처펀드란 부실자산이나 부실기업을 싼 값에 인수해 직접 정상화시키거나
상황이 호전되기를 기다려 고가에 되팔이 차익을 내는 기금 또는 회사이다.

이들은 부실자산및 기업에 대한 정보분석력과 처리노하우를 통해서
고수익을 실현하고 있다.

벌처펀드는 투자행태에 따라서 경영권인수형 증권투자형 자산인수형
혼합형 벌처펀드로 나뉘는데 그 설립주체는 헤지펀드 투자운용사 투자은행
등이다.

벌처펀드는 지난 8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 등장하여 파산법 11장을
신청한 부실기업의 자산(채권, 부동산 등)이 주요 투자대상이 되어왔다.

이 11장은 우리의 법정관리제도와 비슷한데 이에 속한 기업은 회생가능성이
높아서 투자의 위험도 상대적으로 낮다.

최근 미국의 벌처펀드들은 막대한 부실채권을 안고 있는 일본 금융기관의
부동산을 헐값에 매입하는 등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연초부터 카길 인베스트먼트, DLJ와 베어스턴스 등
유명기관이 설립한 벌처펀드들이 상륙하여 국내 금융기관 부실채권의
매입을 타진하고 있다.

또한 지난 3월에는 한라그룹이 미국의 투자은행인 로스차일드사로부터
10억달러의 브리지론을 들여오는 거래를 성사시킨바 있다.

한라그룹은 그 돈으로 계열사의 빚을 갚아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로스차일드는 외국인 투자자에게 한라그룹의 지분매각을 주선하거나
담보로 잡은 자산을 매각하여 투자자금을 회수하게 된다.

이는 부실기업의 경영을 정상화시킨 후 매각한다는 측면에서 한국에서
벌처의 개념을 적용하여 대규모 구조조정을 하는 첫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외국 벌처펀드의 국내시장 진출이 본격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외국인의 우리나라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부실자산이나
부실기업을 거래할 때 우리가 부르는 값과 외국 벌처펀드가 사려는 가격이
현저하게 차이가 나서 시장 자체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및 금융기관들이 구조조정에 이들을 활용하려면 과거의 시가에
연연해 하지 말고 유동성 확보를 최우선하는 견지에서 매도가격을 거래가
가능한 수준으로 낮출 필요가 있다.

정부 당국에서도 이들의 활동을 도와주어 구조조정을 촉진한다는
차원에서 제도상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예를들면 부동산가격이 폭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행 양도소득세제는
시장을 과도하게 위축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으므로 이를 잠정적으로
정지하여 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

한편 금융기관들의 경우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기 위해서는 은행들이
공동으로 벌처펀드(bad bank)를 설립하여 부실자산을 분리 처리하고
여기에 외국 벌처펀드 전문회사를 운용사로 참여시켜 노하우를 전수받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김종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kjn@seri-samsung.org>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