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기 <고려대 교수/경영학.학술원 회원>

최근 언론매체들은 기업과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이 빅딜과 빅뱅을 통해 곧
이루어질 것이라고 연일 보도하고 있다.

어떠한 형태의 구조조정이 될는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제도나 조직만의
구조조정으로서는 부족하고 경영관리층의 패러다임(사고의 틀)도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서는 구조조정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사실에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것 같다.

IMF관리체제 이전까지 우리나라 기업의 경영관리층이 가졌던 패러다임은
한마디로 말해서 "장기형 경영"의 패러다임이었다.

이것을 "바둑형 경영"의 패러다임으로 바꾸는것이 바로 경영패러다임의
구조조정이라고 할수있다.

장기의 경기규칙은 철저하게 중앙집권적이고 군주중심적이며 다계층적인
원리에 입각해서 만들어졌다.

졸 사 마 상 포 차에 적용되는 룰이 신분차별적으로 다 다를뿐만 아니라
5졸 쌍사 쌍마 쌍상 쌍포 쌍차 모두가 죽지않고 다 살아있어도 임금이
상대방의 공격으로 피할곳이 없는 꼬닥장이 되면 게임은 지게 된다.

너무나도 임금1인 중심의 게임이 바로 장기이다.

이에 반해 바둑은 "19x19=361"의 바둑판에서 흑백 바둑알이 똑같은 룰에
의해서 평등하게 게임을 하게 되어 있다.

임금도 없고 졸병도 없고 꼬닥장도 없다.

바둑알 모두가 똑같은 신분과 지위를 갖고 있다.

말하자면 모두가 졸인 동시에 모두가 왕이기도 한 바둑알이다.

장기가 점과 선의 게임이라면 바둑은 면적의 게임이라고 할수 있다.

우리나라 기업이 앞으로 규모의 대소에 관계없이 장기형 경영대신 바둑형
경영을 해야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요즘처럼 구조조정과 감량경영(down-sizing)이 요청되는 시점에서는
장기와 같은 다단계의 위계조직을 슬림화해야 한다.

신속한 의사결정과 효율적인 업무집행을 위해 결재과정이나 계층조직을
2~3단계로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다.

지금은 "스피드경영"이 요청되는 시기이다.

따라서 신속한 정보의 수립.처리.전파와 신속.정확한 의사결정이 기업
활동의 성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수가 있다.

"빨리.먼저.자주.제때"의 네가지 스피드경영요소는 바둑형 경영으로
강화될수가 있다.

둘째 장기는 창의력이 별로 필요없는 게임이다.

졸 사 마 상 포 차 왕에 적용되는 경기규칙만 외워 그 규칙에 순종하는
테두리안에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게임인데 반해 바둑은 무한한 창의력과
순발력과 지혜를 필요로 하는 게임이다.

벤처기업도 바둑형 경영발상으로 성공이 가능하지 장기형 경영발상으로는
불가능하다.

셋째 바둑형 경영은 조직구성원의 일체감 조성에 가장 효과적이다.

모두가 사장이나 종업원 입장이 돼 조직의 목표달성에 일체감을 갖고
단합된 자세로 임할수 있게 하는것이 바둑형 경영이다.

모두가 한가족이라는 일체감을 갖고 일을 할수 있기 때문에 노사대립이나
상하간의 갈등을 현저하게 줄일수 있다.

또 충성심 애사심으로 다진 높은 근로의욕과 사기, 그리고 제고된 생산성과
능률로 회사의 목표달성에 크게 이바지할수 있을 것이다.

넷째 장기형 경영은 소유경영자나 전문경영자 1인중심의 경영으로서
모든 최종적인 의사결정은 이 한사람에게 의존하기 때문에 이 1인
최고경영자가 오판을 하거나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 회사는 치명상을
입기가 쉽다.

또 1인중심 경영체제하에서는 이 한사람이 부재중이거나 유고시엔
의사결정이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못해 경쟁자에게 밀리기 쉽다.

톱.다운(하향식)경영이기 때문에 모든 임원이나 종업원들은 절대경영권을
가진 오너나 전문경영인 한사람의 눈치만 보고 이 사람이 시키는 일만 하기
때문에 모든 조직 구성원이 피동적으로 움직일 뿐이다.

권한과 책임의 위양이라는 지방분권적 경영은 생각조차 할수 없기 때문에
조직의 경직성 심화로 조직이 동맥경화증에 걸리기 쉽다.

앞으로 우리나라 기업이 IMF관리체제를 빨리 벗어나 세계적인 초우량
기업으로 발전해나가려면 반드시 "장기형 경영"에서 "바둑형 경영"으로
패러다임과 경영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