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웨스팅하우스의 변신 전략 ]

김영만 < 주미 한국상공회의소 회장 >

그동안 세계의 숱한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펴왔지만 가장 과감하고도
성공적인 예로 웨스팅하우스를 빼놓을 수 없다.

웨스팅하우스라는 이름은 오늘까지도 명실공히 전자분야의 세계적인
브랜드이며, 선진기술의 상징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웨스팅하우스라는 이름은 없다.

더이상 전자 사업도 하지 않는다.

과감한 변신을 추구한 끝에 회사이름조차 방송사인 CBS로 바꿔 버렸다.

지난 1941년12월 세계 최초로 장거리 레이더를 개발한 기업이 바로
웨스팅 하우스였다.

80년대 후반까지 전자 관련 방위산업, 발전설비, 냉장설비, 핵 관련
엔지니어링 등 기술집약 산업의 선두 주자로서 웨스팅하우스는 제너럴
일렉트릭(GE)과 어깨를 나란히 해왔다.

그러나 웨스팅 하우스는 80년대 들어 경영상의 문제에 부딪쳤다.

GE와 달리 경직적이고 편협한 기업 문화의 병폐가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
이었다.

GE는 이 문제를 금융 자회사 설립을 통해 효과적으로 헤쳐 나갔다.

GE 캐피털이라는 자회사를 통해 고객들의 구매를 적극 지원하는 등 모기업의
핵심 주력분야를 효율적으로 뒷받침했다.

웨스팅 하우스도 금융 자회사를 설립하기는 했으나, 주력사업의 활성화
보다는 부동산 투자나 당시 유행했던 적대적 기업인수(LBO) 같은 투기성
사업에 한 눈을 팔았다.

웨스팅 하우스가 벼랑 끝에서 대변신의 결단을 내린 것은 93년 펩시콜라의
마이클 조단을 회장으로 영입하면서부터 였다.

"구조조정의 귀재"로 이미 명성을 떨치고 있던 조단 회장은 "위기의 순간
에는 제로 베이스에서부터 다시 생각하라"는 평범한 금언을 과감히 실천에
옮기는 것으로 웨스팅 하우스 대변신의 서곡을 울렸다.

기업의 모태를 이뤄온 전자부문의 제조시설과 모든 자산을 미련없이 매각한
것이다.

대신 유망산업으로 떠오른 방송사업에 눈길을 돌렸다.

전자부문을 처분한 자금으로 명문 방송사인 CBS를 인수했다.

심지어 "웨스팅 하우스"라는 이름조차 포기했다.

본사도 텃밭이었던 피츠버그에서 CBS 본사가 있는 뉴욕으로 옮겼다.

조단 회장이 이런 결단을 내리기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도 처음에는 되도록 전자사업을 살려내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웨스팅하우스가 쌓아 온 금자탑을 지켜보려고 했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다.

관료주의 성향 등 누적된 문제들로 인해 실패로 끝났다.

그가 마지막으로 택한 카드가 바로 CBS 인수를 통한 대변신이었던 것이다.

CBS도 문제가 많은 기업이었다.

95년 조단 회장이 54억 달러에 인수했을 당시 CBS는 미국의 3대 방송사중
최악의 경영성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단 회장은 이 방송사를 마침내 메이저 TV 방송사중 평균 시청률
1위 자리로 올려 놓았다.

덕분에 96년말 19달러였던 주가가 97년 말에는 29달러로 상승했고, 지금은
32달러를 웃돌고 있다.

한국 재계에도 "구조 조정"이 최대 현안으로 대두돼 있다.

얼마 전 서울을 방문했을 때 국내 관련 인사들에게 웨스팅 하우스의 사례를
들려 주며 "제로 베이스에서의 전면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설명한 적이 있다.

물론 기업이 "역사"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새 출발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종업원을 줄이고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30여년 간을 지배해 왔던 사고방식에서 과감히 벗어나 세계
경쟁을 염두에 둔 21세기형 사업을 선정하고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 기업
구조조정의 핵심이 아닌가 생각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