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극장, 노트르담 대성당, 개선문 등 각종 문화재와 유적은
파리를 차라리 거대한 박물관으로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파리를 보면 근대 유럽문명이 보인다"는 말도 그래서 생겼다.

하지만 프랑스의 현재와 미래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오르크운하와 데니스운하가 만나는 파리북부 라 빌레트(La Villette)가 그
물음에 답을 한다.

"과거 현재 미래가 조화롭게 어울려 프랑스의 문화적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로랭 드리아노 홍보담당관).

라 빌레트는 공원속에 과학박물관과 음악당이 있는 문화공간.

그러나 가장 프랑스적인 건축물과 운영방식으로 "작은 파리"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하루에도 10여개 각종 행사가 열리며 관람객이 연간 1천만명을 넘는다.

연령과 인종을 초월한 세계각지의 방문객들이 찾아오는 "문화의 용광로"인
셈이다.

이곳이 당초엔 가축시장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라 빌레트의 역사는 19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68년 건설된 도축장을 중심으로 한동안 가축시장이 번성했었다.

하지만 1970년대말 파리 도시기능의 확대로 가축시장이 교외로 옮겨가면서
55ha에 이르는 부지활용이 관건으로 떠올랐다.

개발주체인 파리시청은 각계각층의 여론을 수렴, 문화시설을 짓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문화가 생활의 중심을 이뤄야 한다"는 프랑스인의 사고방식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물론 범죄가 빈번한 빈민가에 고급주택을 만들어 봤자 중산층이 옮겨올리
없다는 현실적 판단도 고려됐다.

도심의 슬럼지역을 시민 모두가 즐겨 찾는 과학박물관과 음악당 공원 등으로
재개발해 자연스럽게 주변지역을 정화하고 도시전반에 문화기능을 불어넣자는
장기적인 안목인 셈이다.

파리시청은 1980년 전국적인 설계현상공모를 통해 아드리안 펜실베르의
설계계획안을 채택, 공사에 들어갔다.

1983년 3월에는 파리 비엔날레 개최를 기념, 일부 시설을 개장했다.

개발과정에서 돋보이는 부분은 과거 건축물은 보존한다는 방침.

혐의시설인 도축장도 19세기 프랑스 건축기술을 상징하는 우아한 철골구조를
갖췄다는 이유로 살렸다.

대신 외부를 유리로 치장, 가로 2백70m, 세로 1백10m, 높이 40m에 달하는
과학박물관으로 개조했다.

어린이들이 과학을 체험하는 장소로 활용키로 하고 내부를 상설전시장과
부속전시장으로 나눴다.

4개 상설전시장은 "지구에서 우주로" "생명의 모험" "물질과 인간의 노동"
"언어와 커뮤니케이션"이 주제다.

부속전시장은 모두 5개.

어린이 과학교육을 위한 "엥방토리움" 자료보관센터인 "메디아테크" 영화
발명가의 이름을 딴 과학영화상영실 "루이 뤼미에르" 천체의 움직을 보여주는
반구형 영사실 "플라네타리움" 그리고 각국의 산업.기술정보를 알려주는
"산업의 집"이 있다.

관객을 매료시키는 또 하나의 명소는 박물관 앞 직경 36m에 달하는 "제오드
시청각홀".

물과 인간을 테마로 남극과 북극, 뉴욕과 베니스를 정경으로 우주공간의
파노라마를 펼쳐 방문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고 있다.

음악당은 과학박물관 남쪽에 있다.

과학박물관이 "과학산업도시"라면 음악당은 "음악도시"인 셈이다.

서쪽 블럭에는 파리국립음악원을 유치, 젊은 음악가를 양성하고 있다.

동쪽 블럭에는 국립음악원의 수집품을 모은 "악기박물관"과 컨서트홀,
음악교육연구센터가 들어서 있다.

과학박물관과 음악당을 하나로 통합하고 있는 것이 라 빌레트 공원.점.선.
면을 중첩시켜 구성한 전위적인 설계 컨셉이 돋보인다.

유리 언덕 안개 섬등을 주제로한 10개 조형물이 산책로와 연결돼 있다.

이곳에서는 클래식과 랩, 고전무용과 전위예술, 오페라와 서커스 등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각종 예술행사가 열린다.

< 김태철 기자 synergy@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