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달러 공방이 시작된 지 올해로 27년이 됐다.

이 기간의 대부분은 엔화를 어떻게 강세로 끌어올리느냐는 것이 분쟁의
테마였지만 클린턴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분위기가 역전돼 95년부터는
엔약세가 주된 논란거리가 되고있다.

최근에는 미국 금융자본의 이해가 중시되면서 엔약세가 더욱 강조되고
있다.

엔화는 71년까지는 IMF(국제통화기금)가 지정해준 달러당 3백6엔으로
고정됐었다.

그러다가 71년12월 16.88%나 한꺼번에 평가절상됐다.

일본의 경상 흑자가 늘어나자 미국등 선진 10개국이 엔화의 대폭적인
평가절상을 요구했던 것.

소위 스미소니언 합의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평가절상 압력은 계속됐다.

일본은 73년 2월엔 달러당 2백73.10엔으로 환율을 내리고 아예
고정환율제도를 폐지했다.

74년 오일쇼크로 3백엔밑으로 떨어졌던 엔화는 미국경제의 디플레이션으로
강세를 지속했다.

78년7월엔 2백엔선을 넘어섰고 10월31일에는 175.50엔까지 올랐다.

그러나 2차 오일쇼크(78년 12월)와 미국의 달러화 방어조치(80년 4월)로
82년 10월에는 274.70엔으로 급락하기도했다.

엔저는 일본의 무역수지 흑자폭을 대폭 넓혔다.

선진5개국 재무장관은 85년 9월 엔화를 평가절상키로 했다.

이게 유명한 플라자 합의다.

엔화는 강세로 돌아섰고 88년 11월 1백21.15엔까지 올랐다.

걸프전등으로 1백40엔 부근을 맴돌던 엔화는 94년 6월 1백엔을 돌파했다.

95년4월에는 79.75엔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일본이 거품경제 붕괴의 후유증에 시달리면서 95년 12월에는
다시 1백엔을 밑돌기 시작했다.

마침 미국 경제가 호황으로 전환 됐다.

달러 강세 기조가 모습을 드러냈다.

엔화는 작년 12월에 1백30엔,올 4월엔 1백35엔으로 떨어졌고 이제
1백50엔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엔의 이같은 약세는 실물경제 측면외에 금융적 요인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일본은 경기부진으로 고전하는 지금도 미국을 상대로 엄청난 무역흑자를
내고있다.

반면 달러가 초강세를 보이고 있는 미국은 무역적자가 사상최대 수준이다.

실물의 방향과 통화가치가 이렇게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역시 일본과 미국 금융산업의 경쟁력 차이를 반영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 조주현 기자 fores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