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JM은 콸라룸푸르 인근 켈랑공단에 위치한 한국계 자동차부품회사.

이곳에 근무하는 할림 마르숙(32) 과장은 한국어가 꽤 유창하다.

한국에서 2년간 대학을 다녔기 때문이다.

할림씨는 지난 94년부터 서울대 기계공학과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한 후
말레이시아로 돌아와 곧바로 SJM에 취직했다.

"외국기업이라고 해서 다를건 없다.

어차피 여기서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도 낸다.

말레이시아에 있는 이상 모두 말레이시아기업이다.

대우도 좋으니 더 바랄게 없다"

할림씨는 한국계회사에 근무하는 것이 아주 만족스럽다는 표정이다.

말레이시아에선 "투자는 곧 고용창출"로 인식된다.

정부는 물론 일반국민들의 생각도 그렇다.

외국인투자는 더욱 환영받는다.

국내자본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일반 근로자들도 외국계회사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다.

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콸라룸푸르 무역관의 임성빈 관장은 "외국
기업들이 말레이시아를 선호하는 이유가 바로 이같이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국민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말레이시아 외자유치의 역사는 6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의 목표는 각종 투자촉진정책을 통해 민간부문의 역할을 극대화
하는 것.

이른바 "주식회사 말레이시아"식의 접근이다.

투자청(MIDA)의 발족도 이같은 이유에서였다.

이후 MIDA는 제조업 투자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싱크탱크"로 제역할을
정립했다.

투자유치의 창구역할도 자연스럽게 MIDA가 맡게 됐다.

현재 말레이시아에 진출해 있는 기업은 전세계 50여개국에서 3천5백여개.

이로인한 고용효과만도 연간 50여만명에 이른다.

외국인투자는 말레이시아 경제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투자유치의 또 다른 축은 제조업우대정책이다.

말레이정부는 이미 지난 86년 "투자촉진법"을 만들어 제조업투자에 대한
각종 인센티브를 제도화했다.

첨단산업분야 기업에겐 세금을 감면해 주고, 종업원훈련비용이나 수출증진
활동 등에도 세제혜택을 준다.

반면 유통업이나 서비스업에 대한 투자에 대해선 말레이시아도 규제가
꽤 까다롭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제조업이 활성화돼야 국내 일자리가 늘어나며, 그것이 곧 국가의 이익이기
때문"(MIDA 산업개발국 마샤칼란국장)이다.

"기업의 조력자"로 스스로를 자림매김한 정부의 경쟁력은 실제 경쟁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지난해 12월 동아시아 제조기지로 한국 대신 말레이시아를 선택한
다우코닝사가 좋은 예다.

당시 한국에선 부처간 이견으로 "이게 안된다, 저게 부족하다"고 발목을
잡기 바빴지만 말레이시아에선 정부부처 간부들로 다우코닝만을 위한
"특별대책반"이 구성됐다.

대책반은 투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투자과정에서의 애로사항을 발굴
하는 등 입체적인 유치작전을 폈다.

대책반수준에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을 땐 각료회의까지도 열렸다.

여기엔 중요한 철학이 깔려 있다.

"일자리를 만들고 산업구조를 고도화시키기 위해서라면 "법과 제도"의
틀도 뛰어넘을 수 있다"(방 유 훅 주한말레이시아 상무관)는 발상의 전환
이다.

다우코닝의 입장에선 말레이시아로 가는 게 너무도 당연했다.

말레이시아의 투자유치정책엔 이같이 분명한 지향점이 있다.

콸라룸푸르를 중심으로 수도권일대에 정보화단지를 조성한다는 "멀티미디어
슈퍼 코리더(MSC)사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마하티르 수상은 자국의 정보화수준을 한단계 높이기 위해 정보통신, 전자
등 첨단분야의 다국적기업들에게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내걸었다.

일단 MSC에 들어오는 기업에겐 세제혜택은 물론 출자지분에 대한 규제조차
없다.

현재 전세계 1백80여개 기업이 MSC의 지위를 얻기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루슨트테크놀로지, 지멘스 등 굴지의 기업들이 투자를 확정했다.

말레이시아 역시 최근 아시아를 휩쓴 금융위기로 링기트화 폭락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MSC사업만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오히려 당초 계획이 1년 정도 앞당겨질 것이라는게 정부관계자들의 전망
이다.

외국인 투자를 지렛대로 삼아 "국가의 이익"을 꾀하는 말레이시아판 "기획
유치"의 승리인 셈이다.

< 콸라룸푸르=이의철 기자 ec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