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용의 눈물'을 보고 .. 정옥자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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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자 < 서울대 교수.한국사 >
장장 2년여에 걸쳐 31일 1백59회로 대미를 거두는 대하사극 "용의 눈물"은
숱한 화제를 뿌리며 안방극장을 석권했다.
시청자도 남녀노소로 다양하게 분포돼 그 어느 드라마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역사소설로 널리 알려진 장길산과 임꺽정 등은 야사를
기반으로 하는 소설로 정사에서는 거의 취급하고 있지않은 것인데 반해
용의 눈물은 정사인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따라서 상황의 전개가 훨씬 객관적이고 실증적으로 보여 시청자들에게
호소력을 더욱 안겨줬다고 생각한다.
"용의 눈물"이 폭발적인 인기를 끈 또다른 이유는 대선에서 적나라하게
벌어진 파워게임과 조선 건국기의 왕들이 벌인 권력투쟁이 비교돼 흥미를
유발시켰기 때문이다.
또 건국초 선굵은 행보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용들의 행진이 작금의
정치가들과 비교되면서 오늘의 난국을 수습,국가를 위기에서 구원할 강력한
지도자를 그리는 국민의 염원이 가세했다.
비교적 충실한 고증작업과 궁중생활의 격조를 살리려는 노력, 화려한 의상
등이 인기상승에 일조했다.
이러한 장점과 인기에도 불구하고 "용의 눈물"은 위험요소를 갖고 있었다.
우선 모든 정치행위를 권력투쟁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현대의
정치판을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정치판에서 권력투쟁이 벌어지는 것은 고금동서의 보편적 특징이다.
무엇을 위한 권력투쟁이냐 하는 점에서 왕권강화라는 메시지는 전달되고
있지만 무엇을 위한 왕권강화냐 하는 점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못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왕실에 조금이라도 도전할만한 힘이 있다고
판단되면 모조리 의심을 하고 숙청해버린 태종의 행위를 정치의 장에서는
"늘 있는 일"로 정당화해 오늘날 추악한 정치싸움을 기정사실화한 측면도
있다.
다음은 시청자의 의식에 파고 든 권력병의 전파다.
태종이 왕권을 강화하기위해 자신을 도와준 측근들까지 제거하고 자신의
처가는 물론 세종의 처가까지 도륙하다시피하는데 이르러서 시청자들은 과연
권력이란 지금이나 그때나 무서운 것이라는 사실에 전율하면서도 권력의
무소불능한 힘에 자신도 모르게 빨려들어가며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낀 것이
아닐까.
그 어느쪽도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태종이 왕권강화를 위해 권력의 화신으로 묘사되는 것은 왕조초기에
국체의 상징이며 국가의 구심점인 왕의 권한을 강화, 반란이나 반역을
방지하고 국가의 안정을 도모하려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처참한 살육도 성세를 위한 준비작업으로 합리화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세종의 치세가 있었기에 태종의 절대권력이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사극도 동시대인의 시각에서 재구성해야 관심을 끌고 인기도 누리게
되므로 지금 우리가 갖고있는 가치관이나 생활감정이 투영되지 않으면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현재적인 관점에서 인기에 편승하다 보면 사극본연의
자세와 역할을 잃고 수준이 떨어진다.
아무튼 이렇게 용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반석위에 올려놓은 조선왕조는
건국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나서는 왕권과 신권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뤄
군신공치하며 5백년의 생명력을 유지했다.
우리 역사상 어떤 왕조보다 강도높은 국민통합을 이뤄냈고 동아시아 최고의
문화국가로 발돋움했으며 조선후기에 와서는 내 문화가 최고라는 문화지존
의식을 형성시켜 변방의식을 완전히 탈피했다.
오늘날 우리가 세워야 할 확고한 주체성과 도덕성의 뿌리는 바로 조선시대에
있다.
앞으로 우리가 혼란을 겪을수록 그 대안으로 조선왕조에 대한 관심은 고조될
것이다.
조선왕조를 주제로 한 역사물도 계속 나오리라 생각된다.
야사나 궁중의 비화를 흥미나 오락위주로 다루는 수준은 "용의 눈물"로
극복됐다.
조선왕조 장수의 비결, 즉 사회통합능력과 그시대가 지향한 도덕적
문화국가라는 이상사회에 대해 거시적으로 다루는 장장대하같은 역사물의
출현을 기대해본다.
그것은 황폐해진 국민의 마음에서 오염물질을 씻어내는 청량제같은 역할을
해 국민정신의 각성을 유도하고 새로운 생명력을 충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30일자 ).
장장 2년여에 걸쳐 31일 1백59회로 대미를 거두는 대하사극 "용의 눈물"은
숱한 화제를 뿌리며 안방극장을 석권했다.
시청자도 남녀노소로 다양하게 분포돼 그 어느 드라마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역사소설로 널리 알려진 장길산과 임꺽정 등은 야사를
기반으로 하는 소설로 정사에서는 거의 취급하고 있지않은 것인데 반해
용의 눈물은 정사인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따라서 상황의 전개가 훨씬 객관적이고 실증적으로 보여 시청자들에게
호소력을 더욱 안겨줬다고 생각한다.
"용의 눈물"이 폭발적인 인기를 끈 또다른 이유는 대선에서 적나라하게
벌어진 파워게임과 조선 건국기의 왕들이 벌인 권력투쟁이 비교돼 흥미를
유발시켰기 때문이다.
또 건국초 선굵은 행보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용들의 행진이 작금의
정치가들과 비교되면서 오늘의 난국을 수습,국가를 위기에서 구원할 강력한
지도자를 그리는 국민의 염원이 가세했다.
비교적 충실한 고증작업과 궁중생활의 격조를 살리려는 노력, 화려한 의상
등이 인기상승에 일조했다.
이러한 장점과 인기에도 불구하고 "용의 눈물"은 위험요소를 갖고 있었다.
우선 모든 정치행위를 권력투쟁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현대의
정치판을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정치판에서 권력투쟁이 벌어지는 것은 고금동서의 보편적 특징이다.
무엇을 위한 권력투쟁이냐 하는 점에서 왕권강화라는 메시지는 전달되고
있지만 무엇을 위한 왕권강화냐 하는 점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못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왕실에 조금이라도 도전할만한 힘이 있다고
판단되면 모조리 의심을 하고 숙청해버린 태종의 행위를 정치의 장에서는
"늘 있는 일"로 정당화해 오늘날 추악한 정치싸움을 기정사실화한 측면도
있다.
다음은 시청자의 의식에 파고 든 권력병의 전파다.
태종이 왕권을 강화하기위해 자신을 도와준 측근들까지 제거하고 자신의
처가는 물론 세종의 처가까지 도륙하다시피하는데 이르러서 시청자들은 과연
권력이란 지금이나 그때나 무서운 것이라는 사실에 전율하면서도 권력의
무소불능한 힘에 자신도 모르게 빨려들어가며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낀 것이
아닐까.
그 어느쪽도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태종이 왕권강화를 위해 권력의 화신으로 묘사되는 것은 왕조초기에
국체의 상징이며 국가의 구심점인 왕의 권한을 강화, 반란이나 반역을
방지하고 국가의 안정을 도모하려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처참한 살육도 성세를 위한 준비작업으로 합리화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세종의 치세가 있었기에 태종의 절대권력이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사극도 동시대인의 시각에서 재구성해야 관심을 끌고 인기도 누리게
되므로 지금 우리가 갖고있는 가치관이나 생활감정이 투영되지 않으면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현재적인 관점에서 인기에 편승하다 보면 사극본연의
자세와 역할을 잃고 수준이 떨어진다.
아무튼 이렇게 용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반석위에 올려놓은 조선왕조는
건국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나서는 왕권과 신권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뤄
군신공치하며 5백년의 생명력을 유지했다.
우리 역사상 어떤 왕조보다 강도높은 국민통합을 이뤄냈고 동아시아 최고의
문화국가로 발돋움했으며 조선후기에 와서는 내 문화가 최고라는 문화지존
의식을 형성시켜 변방의식을 완전히 탈피했다.
오늘날 우리가 세워야 할 확고한 주체성과 도덕성의 뿌리는 바로 조선시대에
있다.
앞으로 우리가 혼란을 겪을수록 그 대안으로 조선왕조에 대한 관심은 고조될
것이다.
조선왕조를 주제로 한 역사물도 계속 나오리라 생각된다.
야사나 궁중의 비화를 흥미나 오락위주로 다루는 수준은 "용의 눈물"로
극복됐다.
조선왕조 장수의 비결, 즉 사회통합능력과 그시대가 지향한 도덕적
문화국가라는 이상사회에 대해 거시적으로 다루는 장장대하같은 역사물의
출현을 기대해본다.
그것은 황폐해진 국민의 마음에서 오염물질을 씻어내는 청량제같은 역할을
해 국민정신의 각성을 유도하고 새로운 생명력을 충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