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리스크 관리에 다시 비상이 걸렸다.

외환시장이 불안해지고 있어서다.

선물환거래마저 실종돼 환리스크를 회피(헷지)하기 위한 수단도 마땅치
않다.

이에따라 외국인들은 서둘러 한국을 빠져 나가는 기색이 역력하다.

외국은행 국내지점은 물론 국내기업과 개인들도 "달러화 확보"에 나서고
있다.

자칫하면 "환율불안->외국인투자축소및 달러가수요->환율급등"의 악순환이
재현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환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한 흔적은 우선 외국인투자가들의 동향에서
나타난다.

외국인들은 지난 2월과 3월만 해도 주식및 채권투자를 위해 각각
17억9천만달러와 12억5천만달러를 들여왔다.

그러나 지난달에는 2억달러를 빼내갔다.

이달들어서도 하루 5천만-7천만달러의 유출세가 지속되고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시장을 서둘러 탈출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환차손을 입지 않기 위해서다.

지난 3월말 원-달러환율은 달러당 1천3백83원 수준이었다.

1억달러를 들여왔다면 1천3백83억원을 손에 쥘수 있었다.

그러나 환율은 지난 8일 달러당 1천4백5원까지 올랐다.

주식투자손실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1천3백83억원을 환전하면 9천8백43만달러
밖에 안된다.

환율이 오를수록 환차손은 커진다.

하루라도 빨리 빠져 나가는게 유리하다.

외은 국내지점들도 마찬가지다.

외환시장에서 달러화를 야금야금 사들이고 있다.

본국에서 들여오는 영업자금도 원화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갖고 있다.

환율이 상승했을때 내다 팔면 그만큼 이익이 남는다는 지난해의 경험
때문이다.

국내기업도 다르지 않다.

지난 9일 현재 거주자외화예금은 85억달러에 달하고 있다.

작년말(45억4천만달러)의 곱절수준이다.

사상 최고임은 물론이다.

대상그룹의 경우 라이신사업부문 매각대금 1억2천만달러를 벌써 보름째
외화예금으로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들의 달러선호 현상도 재현되고 있다.

은행창구에는 달러를 사자는 사람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지난 9일 외환은행을 찾은 김모씨(45)는 "주변에서 환율이 오른다며
달러를 사두라고 하기에 달러를 미리 사러 왔다"고 말할 정도다.

이처럼 달러사자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데서 환율이 급등할 가능성을
감지할수 있다.

인도네시아 소요사태 확산, 중국 위안화 평가절하가능성, 노동계의 파업
움직임, 수출의 급격한 둔화, 지지부진한 구조개혁 등 환율을 부추길 요인
투성이다.

선물환거래를 통해 리스크를 회피하려해도 이미 선물환율은 1천6백원대에
육박해 있다.

지난 8일 싱가포르시장에서 6개월물 역외선물환(NDF) 시세는 달러당
1천5백70원까지 올랐다.

국내 선물환 거래는 아예 실종돼 버렸다.

지난해 9월 하루평균 1억3천3백만달러에 달하던 은행간 선물환 거래는
지난 3월엔 1백만달러로 줄었다.

외환딜러들은 지난해 3백86개 상장기업들이 입은 환차손규모는 무려
6조8천5백90억원에 달한다며 이런 경험 때문에 환율급등에 대비해 달러화를
보유하고자 하는 심리가 팽배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 하영춘 기자.hayou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