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종합상사는 그동안 해외투자사업을 벌여왔던 사업개발1팀의 업무를
외국기업의 국내투자알선으로 바꾼다고 25일 밝혔다.

수출과 해외투자사업이라는 "본업"과 거리는 있지만 외자유치가 가장
시급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삼성물산 (주)대우 등 종합상사들도 M&A팀, 해외사업팀에서 비슷한
업무를 하고 있다.

그만큼 외자유치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새정부의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강도가 거세지면서 기업들은 본업은
뒤전으로 하고 생존을 위한 외자유치에 나서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만큼 기업은 혼란스럽다.

대기업그룹의 부채비율을 내년말까지 2백%이내로 낮추라는 은행감독원의
지침이 나오자 대기업들은 당혹해하고 있다.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세운 구조조정안의 골격을 바꿔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새정부의 잇딴 개혁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안"을 마련하는데 회사자원이
지나치게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은 "본업"에 신경쓸 새가 없다.

투자 생산 마케팅은 뒤전으로 밀리고 있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기업도 찾아보기 힘들다.

경영자들은 오로지 생존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는데 온힘을 쓰고 있다.

새정부 들어 기업구조개혁에 대한 압력이 가중되면서 대기업총수들은
외자유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실적으로 구조조정의 해법을 국내에서 찾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부동산을 내놔도 팔리지 않는다.

다른 그룹과 사업을 맞교환하는 "빅딜"도 불가능하다.

현재로선 외국자본유치여부가 기업생존을 좌우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알왈리드 사우디왕자가 현대자동차 (주)대우의 전환사채(CB)에
투자하기 위해 방한했을때도 기업총수들은 그와 만나기 위해 막후에서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전해졌다.

왈리드 왕자와 친분이 있는 유종근 전북지사에 투자를 유치해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마이클 잭슨이 내한했을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기업들은 외자유치에 있어 방법이나 형태는 따지지 않는다.

한라그룹처럼 해외에서 브리지론을 들여와 구조조정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누구나 탐을 내는 핵심사업을 매각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대상그룹이 독일 바스프사에 라이신사업을 매각한게 이 경우다.

기업입장에서는 당장 공장을 돌리고 제품을 파는것보다 외국자본을
유치하는게 훨씬 중요하다.

새정부의 구조조정요구가 잇따르면서 기업들이 겪는 또다른 어려움은
당장 필요한 설비투자나 해외투자사업을 추진하지 못하는데 있다.

모그룹 기획실 관계자는 "올해 총투자규모를 전년의 절반으로 줄였는데
실제 투자규모는 계획의 30-40%에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새정부가 시한을 못박아 촉박하게 부채비율을 축소하라는 상황에서
어떻게 자금조달스케줄을 세워 투자할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만큼 앞으로 그룹의 핵심사업역량이 떨어질 수 있다.

또다른 한그룹은 최근 유럽에서 기업을 인수한후 공식 발표를 미루고
있다.

요즘 상황에서 해외투자가 자칫 그룹의 이미지를 흐릴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예전처럼 줏대있게 사업을 하기 힘든 시대라고 경영자들은 한목소리를
낸다.

정부가 대기업 부채비율축소방침을 강행할 경우 관련기업들은 장단기
사업계획을 다시 짜야하는 애로도 있다.

계획을 짜고 안을 마련하는데 이중 삼중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그룹별로 세워둔 장기비전이나 지난해말 심혈을 기울여 마련한 사업계획
실천도 차질을 빚게 된다.

경영자들은 본업은 제쳐둔채 오로지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회사자산을
사줄 외국자본가를 찾아다녀야 한다.

<이익원 기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3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