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외환 위기의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금융시장을 재정비하고
기업 경영구조를 투명화하는 노력이 시급히 진행돼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미국 일본 영국 호주등 세계 10여개국의 경제학자 1백여명으로 구성된
경제연구 포럼인 "프로젝트 링크"는 지난 16일부터 19일까지 뉴욕 유엔본부
에서 연례 학술회의를 갖고 이같이 지적했다.

회의에서 "아시아 위기의 원인"을 주제로 발표한 윌리엄 쇼 세계은행
아시아담당 수석 연구위원은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은 것은 만성적인 무역
적자와 기업들의 지나친 차입 경영 때문이었다"며 "정부 은행 기업등 각
부문이 투명한 회계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구체적인 개선책을 서둘러 마련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 벨버른대의 맬컴 다울링 교수는 "아시아 경제의 향후 전망"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한국은 올해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하며 최소한 2~3년간
은 심각한 구조조정의 진통을 겪을 것"으로 진단했다.

그는 "핫머니에 대한 규제 장치를 만들지 않을 경우 제2,제3의 환란에
휘말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의 주제 발표 내용을 간추려 싣는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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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쇼 < 세계은행 아시아담당 수석연구위원 >

작년 7월 태국에서 시작된 경제위기가 동아시아 주요국들에 빠른 속도로
확산된 것은 이들 국가의 경제 체질에 치명적 결함이 있었음을 반증한다.

외환 위기가 심각했던 한국과 태국 인도네시아 등은 몇가지 공통적인
결함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경제적으로 거품이 많았다.

특히 94년과 95년을 전후해 대규모로 유입된 외국 자본이 사전 검증이
덜된 비생산적 신규 투자에 상당 부분 소진됐다.

둘째는 96년을 고비로 수출이 부진해졌으며, 이에따라 경상적자 규모가
확대됐다는 점을 들수 있다.

이들 국가는 적자 폭을 메우기 위해 외채를 마구 끌어 썼다.

세째로 금융 부문의 취약성이 꼽힌다.

95년 이전까지만 해도 동아시아 국가들은 수출이 주도하는 고도성장을
지속해 왔다.

멈출줄 모르는 성장 엔진에 주목한 외국 자본이 뭉텅이로 쏟아져 들어왔다.

한국 등은 이들 자본을 고정 투자와 함께 국내외 금융-부동산 시장에
재투자했다.

대규모 투자는 또 다른 수입 수요를 불러 일으켰고, 이에따라 경상적자가
불어났다.

한편으로는 외자 유입에 힘입어 주식시장이 호황을 타냈다.

이들 국가는 대부분 고정환율제를 운영했거나, 정부 개입에 의해 환율을
일정 수준으로 묶어 놓고 있었다.

경직적인 환율 구조 아래서 유입된 외자는 국내 통화량 증가로 연결됐고,
이는 외형적으로 성장을 떠받쳐 주는 것처럼 보였다.

통화 부문에서 문제가 발생했지만 이들 국가의 인플레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던 데는 까닭이 있다.

수입이 거의 자유화돼 상품 가격이 안정될수 있었던 것이다.

대신 늘어난 통화량은 부동산 시장을 뒤흔들었다.

임금 역시 치솟았다.

이런 상황에서 수출이 갑자기 부진해졌다.

환율 부문에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우선 일본의 엔화절하가 문제였다.

95년 이후 일본 엔화는 큰 폭으로 하락 행진을 벌였다.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자국 통화가치를 달러와 연게하고
있었으므로 엔화에 대해 저절로 강세를 보이게 됐다.

여기에 중국도 큰 폭으로 위앤(원)화를 절하하는 바람에 한국 등의 가격
경쟁력이 더 취약해졌다.

게다가 임금까지 치솟는 바람에 수출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주력 수출상품이었던 반도체와 컴퓨터 주변 제품의 국제 시황이 하락한
것은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이런 것들이 외저긴 요인이었다면 취약한 금융 시스템은 상처를 도지게 한
내적인 병인이었다.

동남아 국가들의 경우 95~96년을 전후해 국내총생산(GDP)의 40~50%에
이르는 외국 자본이 몰려들었다.

덩달아 증권시장에서는 주가가 치솟고 부동산값도 마구 올랐다.

외국 자본을 효과적으로 조절하고, 재배분할 만한 금융 시스템이 결여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부와 금융기관들은 엉터리 투자 프로젝트에 대해 금융 지원을 남발했고,
헷지도 않된 역외 달러 차입이 붐을 이뤘다.

금융 거품이 일어난 건 당연했다.

투기성 외국 자본이 언제든지 빠져 나갈수 있었지만 적절한 대책이 마련
되지 않았다.

여기에 덧붙여 한국의 경우는 금융 자산과 부채의 기간 불일치(mismatch)
현상이 심각했다.

해외에서 끌어들인 단기 자본으로 장기시설투자에 나서거나, 금리차를
노려 제3국의 중장기 금융상품에 재투자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창때는 외채의 70%가 단기 채무였을 정도다.

한마디로 동아시아 국가들은 대규모 유입된 외국 자본을 통제하거나 적정
하게 재배분할 만한 거시경제 정책을 갖지 못하고 있었뿐 아니라 과점적
구조를 갖고 있던 금융 산업과 정부의 빈약한 감독기능 등은 필연적으로
금융.경제상의 거품을 조장했던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작년 12월 내놓은 중간 보고서에서 세계 각국이
한국 등과 같은 질곡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대외 부채를 줄이고 <>금융
시스템을 강화하며 <>보다 유연한 환율제도를 도입해야 할 것이라고 권고
했다.

IMF의 이런 권고는 탄탄한 경제 이론에 근 하고 있을뿐 아니라 대다수
선진국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 "개별 국가의 현실에 맞지 않는 탁상곤론"이라는 일부
개도국들의 저항도 없지 않다.

그러나 국가간 자본 이동이 활발한 상황에서 금융 시스템을 안정시키기
위해 반드시 실천해야 할 과제가 하나 있다.

물가 억제선을 정해 두고 이에 맞춰 강력한 통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