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체제의 조기극복이란 막중한 과제를 풀어야할 경제팀의
모습이 정부조직 개편으로 크게 달라졌다.

우선 재정경제원의 예산기능이 기획예산위원회로, 금융감독기능은
금융감독위원회로 떨어져 나갔다.

경제정책에 관한 재정경제원 독재시대의 종언을 엿보게 한다.

청와대도 정책기획수석, 경제특보, 경제고문 등이 대통령참모 역할을 나눠
맡게 된다.

대통령의 신임을 얻기위한 수석비서관의 경쟁도 본격화될 것이다.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경제수석이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했던 시대는 끝난
셈이다.

노태우 정부시절까지만해도 경제정책은 예산편성권을 지닌 경제기획원과
금융및 세제입법권을 지닌 재무부간의 견제속에 입안됐다.

그러나 김영삼정부시절 양 부처가 통합되면서 경제부총리의 한마디로
중요한 경제정책방향이 결정됐다.

국가가 외환위기에 처했던 지난해 10월 강경식전부총리는 21세기 국가과제
강연및 금융감독법 처리에 금쪽같은 시간을 할애했지만 정부내에서 그
누구도 이를 제지하지 못했다.

IMF에 가게된 원인중의 하나가 바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공룡
재경원의 탄생이었다는 지적은 그래서 설득력을 갖는다.

이같은 소수독재형 경제정책 결정과정은 다수 참여의 민주주의방식으로
전환될 전망이다.

당장 재경부장관의 경제부처 장악력이 떨어질수 밖에 없다.

기획예산위원장이 예산편성권과 예산집행평가권을 갖고 있어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커지게 됐다.

재경원 금융정책실이 재경부 금융정책국으로 축소되면서 시장개입은
금감위측에 맡겨진다.

대신 고급정책 개발에 중점을 두게 된다.

청와대 비서실은 김대중대통령의 당부에 따라 일선 경제부처가 미처 생각
하지 못한 정책아이디어를 내는데 주력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정책기획수석의 담당업무는 장기과제, 경제수석실의 경우 단기
과제로 일단 분류되어 있지만 구체적인 시행과정에서 소관업무를 두고
알력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재경부 경제정책국도 유사한 업무를 수행한다.

기획라인의 비대화로 실물경제 비중이 낮아질수 있다.

결국 정책조정기능및 책임소재를 두고 분명한 업무분장이 없는 만큼 청와대
수석비서관, 재경부장관, 기획예산위원장, 금융감독위원장 등이 참석하는
모임이 자주 열릴수 밖에 없다.

경제사령탑이 없다는 비판을 의식, 대통령이 직접 경제현안을 챙기는
한국식 국가경제위원회(NEC) 신설을 청와대가 검토중이다.

그럴 경우 경제장관회의의 위상이 문제가 될수 있다.

이런 점에서 새내각의 경제정책과정은 종전보다 복잡해질수 밖에 없다.

일단 합의제방식이 주축을 이룰 전망이다.

한사람의 잘못된 판단으로 경제정책이 잘못된 길로 빠질 여지는 줄게 된다.

문제가 생길때마다 캠퍼주사식 요법으로 대응하는 실수를 방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제대로 작동될 경우 사후부작용까지 염두에 둔 신중한 의사결정으로 정책의
효율성이 높아질수 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부처간 혼선및 정책의 생산성 하락등이 나타날 수 있다.

과거에는 재경원이 재정금융정책을 주도적으로 마련했다.

앞으로 예산은 기획예산위원회가,금융기관 창구지도는 금감위가 맡고
세제지원은 재경부의 몫이 된다.

매끄러운 조정이 없다면 대책결정이 늦어지기 쉽다.

당장 물가정책만해도 재경부가 다른 부처의 협조를 받아내기 힘들어졌다.

예산편성안의 경우 예산청이 기획예산위로부터 지침을 받아 편성한뒤
재경부가 제출하게 된다.

외교통상부 산하 통상교섭본부가 통상문제를 전담한다지만 전문적인 내용은
해당부처가 관계하지 않을수 없다.

통상외교에 있어 부처간 파워게임과 혼선은 언제 갑자기 불거져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렇게 볼때 경제정책결정과정에서 견제와 균형,경쟁원리를 실현시킬
기반은 일단 조성됐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자칫 운용의 묘를 이루지 못한다면 부처간 이기주의가 다시 성행
하고 장관및 수석비서관의 충성심 경쟁이 나타나는 등 부작용이 심화될수도
있다는게 중론이다.

<최승욱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