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민칼럼] 30과 64 그리고 0 ..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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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재미있는 말을 한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세상 사는 이치를 숫자에서 찾을 수 있다.
보태어 10이 되는 두개의 숫자로서 곱해 가장 큰 숫자가 나오는 것은 5와
5다.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그것을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진 조직이라야 높은 기대치를 지닌다고
해석한다.
30과 64라는 두 숫자의 비교는 또다른 것을 말해준다.
1과 그 자신외의 정수로는 나눠지지 않는 숫자, 곧 소수로 분해해보자.
2.3.5의 세개 소수의 결합인 30은 1.2.3.5.6.10.15.30의 8개 약수를 갖고
있다.
반면 2라는 소수 여섯개의 결합인 64는 덩치가 30보다 두배이상 크지만
1.2.4.8.16.32.64의 7개 약수에 그친다.
역시 이질적인 것간의 결합이라야 포용범위가 넓다는걸 일깨워준다.
대중탕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듣던 DJP연대가 집권에 성공한 것도
그런 이치에서일 것이라고 풀이한다면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오늘 공식 출범하는 새정권의 국무위원인사는 이래저래 관심사다.
하마평이 돌고 있는 면면을 보면 정말 한 팀의 구성원이 되리라고 생각
조차 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이 뒤섞여 있다.
"운동권"은 운동권대로, 보수적인 계층은 또 그 나름대로의 이유에서
마뜩지 않게 여길 수도 있을 것같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잘못됐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물 좋고 정자 좋은 곳, 그런 곳이 어디 쉽겠는가.
"굴절된 시절"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더욱 그런 일면이 있다.
"실전"경험이 있는 사람은 어딘가 이미지가 좋지 않고, 이미지가 좋은
사람은 경험이 없어 뭔가 위태로워 보이는게 보통이다.
그렇다고 비오는 날 논두렁길을 걸었던 사람은 바지에 흙탕 얼룩이 졌다고
빼고, 얼룩이 없는 사람은 경험이 없다고 뺀다면 어떤 사람이 남겠는가.
따귀도 빼고 국물도 빼면 해장국이 될 까닭이 없다.
지난 5년간만 해도 사람낭비가 너무도 많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새정부의
인사에 너무 까다로운 주문을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YS와 DJ는 인사스타일이 여러가지 면에서 다른 것 같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조적인 것은 한 사람은 공식 발표때까지 철저한 비밀을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한 반면 또다른 한 사람은 여론의 검증이 가능하도록
후보자명단을 의도적으로 흘린다는 점이다.
어느 쪽이 더 좋은지를 굳이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보는 이의 기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내 기준으로 본다면 인사권자로서의 DJ에게 점수를 주고 싶은게 청와대
경제수석인사다.
기용된 사람이 특별히 훌륭했다는 뜻에서가 아니다.
오늘같은 상황에서 경제수석은 실물경제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 적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DJ가 인사가 망사였던 전철을 밟지는
않을 것 같다는 믿음이 가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언론인 공무원 등을 신오적으로 규정한 시를 쓰는 등의 행적이 경제수석
으로 적당한지 여부는 보는 이의 잣대에 달린 문제로 여기서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어쨌든 마땅치 않게 보는 시각이 결코 적지 않았지만 당초 생각대로 밀고
나간 것은 스스로의 판단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사람을 마구잡이로 용도
폐기하지 않는 인간미를 보여준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심한 경우 며칠만에 바뀌는 인사, 복잡한 일만 있으면 분위기
쇄신용으로 단행되는 인사, 그래서 빚어진 "장관들의 행진"만은 적어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쓰게 마련이라는 얘기가 있다.
또 강장밑에 약졸없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쓰는 사람과 쓰이는 사람의 인간적인 관계다.
인간관계가 인사관리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은 1924년부터 8년에 걸쳐
하버드대 메이요 교수팀이 시카고 교외의 웨스턴 일렉트릭 호손공장에서
실시한 이른바 호손실험이후 일반화된 인식이다.
인사권자가 훌륭하고 그 대상자도 뛰어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관계에
문제가 있다면, 인사 대상자가 언제 잘릴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라면
그 조직이 제대로 될리가 없다.
맡겼으면 믿고 애정을 가져야 한다.
2x3x5로 64보다 훨씬 작지만 더 많은 약수를 갖는 숫자, 곧 30을 선택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2x3x5에 그치지 않고 0을 한번더 곱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면
도로아미타불이다.
0이라는 못되먹은 숫자, 조직에서 어떤 존재들이 그것인가.
"얼굴없는 실력자"가 바로 그것이다.
책임도 지지 않고 조직도표에도 나타나지 않지만 무한한 힘을 갖고 있는
존재, 그건 한마디로 암이다.
YS정권의 실패원인도 그런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게 힘을 실어줘야 할 존재가 있다면, 그 경력이 어떻건 가신이건
아니건간에 오히려 전면, 곧 공조직으로 나타나게 하는게 차라리 낫다.
험난했던 오랜 세월, 분신같은 역할을 해온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DJ의
자산이자 부담이다.
그들이 0의 위력을 발휘하려 들 것인가.
아니면 0의 또다른 측면인 "없는 존재"로 자족할 것인가.
바로 그것이 새정권의 진면목을 결정할 가장 큰 변수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5일자).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세상 사는 이치를 숫자에서 찾을 수 있다.
보태어 10이 되는 두개의 숫자로서 곱해 가장 큰 숫자가 나오는 것은 5와
5다.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그것을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진 조직이라야 높은 기대치를 지닌다고
해석한다.
30과 64라는 두 숫자의 비교는 또다른 것을 말해준다.
1과 그 자신외의 정수로는 나눠지지 않는 숫자, 곧 소수로 분해해보자.
2.3.5의 세개 소수의 결합인 30은 1.2.3.5.6.10.15.30의 8개 약수를 갖고
있다.
반면 2라는 소수 여섯개의 결합인 64는 덩치가 30보다 두배이상 크지만
1.2.4.8.16.32.64의 7개 약수에 그친다.
역시 이질적인 것간의 결합이라야 포용범위가 넓다는걸 일깨워준다.
대중탕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듣던 DJP연대가 집권에 성공한 것도
그런 이치에서일 것이라고 풀이한다면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오늘 공식 출범하는 새정권의 국무위원인사는 이래저래 관심사다.
하마평이 돌고 있는 면면을 보면 정말 한 팀의 구성원이 되리라고 생각
조차 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이 뒤섞여 있다.
"운동권"은 운동권대로, 보수적인 계층은 또 그 나름대로의 이유에서
마뜩지 않게 여길 수도 있을 것같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잘못됐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물 좋고 정자 좋은 곳, 그런 곳이 어디 쉽겠는가.
"굴절된 시절"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더욱 그런 일면이 있다.
"실전"경험이 있는 사람은 어딘가 이미지가 좋지 않고, 이미지가 좋은
사람은 경험이 없어 뭔가 위태로워 보이는게 보통이다.
그렇다고 비오는 날 논두렁길을 걸었던 사람은 바지에 흙탕 얼룩이 졌다고
빼고, 얼룩이 없는 사람은 경험이 없다고 뺀다면 어떤 사람이 남겠는가.
따귀도 빼고 국물도 빼면 해장국이 될 까닭이 없다.
지난 5년간만 해도 사람낭비가 너무도 많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새정부의
인사에 너무 까다로운 주문을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YS와 DJ는 인사스타일이 여러가지 면에서 다른 것 같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조적인 것은 한 사람은 공식 발표때까지 철저한 비밀을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한 반면 또다른 한 사람은 여론의 검증이 가능하도록
후보자명단을 의도적으로 흘린다는 점이다.
어느 쪽이 더 좋은지를 굳이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보는 이의 기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내 기준으로 본다면 인사권자로서의 DJ에게 점수를 주고 싶은게 청와대
경제수석인사다.
기용된 사람이 특별히 훌륭했다는 뜻에서가 아니다.
오늘같은 상황에서 경제수석은 실물경제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 적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DJ가 인사가 망사였던 전철을 밟지는
않을 것 같다는 믿음이 가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언론인 공무원 등을 신오적으로 규정한 시를 쓰는 등의 행적이 경제수석
으로 적당한지 여부는 보는 이의 잣대에 달린 문제로 여기서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어쨌든 마땅치 않게 보는 시각이 결코 적지 않았지만 당초 생각대로 밀고
나간 것은 스스로의 판단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사람을 마구잡이로 용도
폐기하지 않는 인간미를 보여준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심한 경우 며칠만에 바뀌는 인사, 복잡한 일만 있으면 분위기
쇄신용으로 단행되는 인사, 그래서 빚어진 "장관들의 행진"만은 적어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쓰게 마련이라는 얘기가 있다.
또 강장밑에 약졸없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쓰는 사람과 쓰이는 사람의 인간적인 관계다.
인간관계가 인사관리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은 1924년부터 8년에 걸쳐
하버드대 메이요 교수팀이 시카고 교외의 웨스턴 일렉트릭 호손공장에서
실시한 이른바 호손실험이후 일반화된 인식이다.
인사권자가 훌륭하고 그 대상자도 뛰어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관계에
문제가 있다면, 인사 대상자가 언제 잘릴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라면
그 조직이 제대로 될리가 없다.
맡겼으면 믿고 애정을 가져야 한다.
2x3x5로 64보다 훨씬 작지만 더 많은 약수를 갖는 숫자, 곧 30을 선택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2x3x5에 그치지 않고 0을 한번더 곱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면
도로아미타불이다.
0이라는 못되먹은 숫자, 조직에서 어떤 존재들이 그것인가.
"얼굴없는 실력자"가 바로 그것이다.
책임도 지지 않고 조직도표에도 나타나지 않지만 무한한 힘을 갖고 있는
존재, 그건 한마디로 암이다.
YS정권의 실패원인도 그런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게 힘을 실어줘야 할 존재가 있다면, 그 경력이 어떻건 가신이건
아니건간에 오히려 전면, 곧 공조직으로 나타나게 하는게 차라리 낫다.
험난했던 오랜 세월, 분신같은 역할을 해온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DJ의
자산이자 부담이다.
그들이 0의 위력을 발휘하려 들 것인가.
아니면 0의 또다른 측면인 "없는 존재"로 자족할 것인가.
바로 그것이 새정권의 진면목을 결정할 가장 큰 변수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