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의 지난 5년은 국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로 시작해 "비아냥과
조소"로 막을 내리게 됐다.

김대통령은 20일 마지막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5년중 영광의 기간은 짧았고
고뇌의 시간은 아주 길었다"는 말로 소회를 밝혔다.

출범당시 지지도가 한때 90%를 넘었던 정권이 종국에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초래한 ''망국의 주범''으로 전락, 실패한 정권이 되고 말았다.

문민정부의 실패 요인으로는 김대통령의 국정운영스타일이 먼저 지적된다.

지나친 인기위주의 국정운영과 독단적인 의사결정이 정책의 일관성을
상실과 정책실패를 가져 왔다는 것이다.

문제가 생길때마다 근본적인 제도적 접근보다는 잦은 개각을 통해 국면
전환을 시도했던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재임기간중 24회의 개각을 통해 6명의 총리와 1백여명의 장관을 양산했다.

각료들의 평균재임기간이 11개월에 불과하고 경제부총리의 경우 7명이
평균 8.6개월정도 근무하는데 그쳤다.

국정운영은 공조직보다는 현철씨의 사조직에 주로 의존, 난맥상을 드러냈다.

"30대의 젊은 이가 아버지의 위세를 등에 업고 나라를 망쳤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현철씨의 국정개입이 국가기반을 흔들었다.

그의 보고가 내각이나 청와대 안기부등 정상적인 공조직을 통한 것보다
위력을 발휘하면서 공조직이 무력화됐던 것이다.

개혁에 대한 체계적인 프로그램이나 주도세력의 결여도 국정실패의 요인
으로 꼽힌다.

취임초기의 국정지표인 변화와 개혁 을 국가경쟁력제고와 연결시키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주도세력 또한 빈약, 개혁방향이
흔들렸던 것이다.

특히 95년이후에는 정권재창출 의욕탓에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최종적인 정책결정을 내리는데 있어 김대통령의
개인적인 능력도 부족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머리는 빌릴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수 없다''는 그의 한계가 지난 5년간
적나라하게 나타났다는 지적이다.

<최완수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