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우골탑이 대학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 적이 있다.

해방과 6.25동란이후 많은 대학이 생겨났다.

지금과 같이 큰 캠퍼스에 우람한 건물을 갖춘 대학은 거의 없었다.

경제는 주로 농업에 의존했고 도시의 대학들에는 시골서 유학온 학생이
많았다.

농촌출신 대학생의 학자금은 소를 팔거나 논밭전지를 처분해 마련하는
경우가 적지않았다.

그래서 대학을 "소가 죽어 키워진 곳"이라는 의미에서 우골탑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 시절 대학에는 학비 마련이 힘들어 청강을 하면서 대학생이라고 하는
사람도 꽤나 있었다 한다.

정식 입학시험을 거치지 않고 그저 1~2개과목을 들을수 있는 허락만을
받고 밖에 나와서는 대학생행세를 했다.

지금은 정식대학생이 사적으로 필요하거나 교양을 목적으로 타과나 대학의
강의를 듣는 것을 청강이라 하지만 40~50년전에는 대학생이 아닌 청강생을
별도로 뽑기도 했다.

지난 86년 발간된 "서울대 40년사"에는 서울대 개교 초기엔 실력고사를
거쳐 청강생의 입학이 허용됐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 학업성적이 우수한 청강생은 정규학생으로 편입시킬 수도 있었다고
적고 있다.

지금같으면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지난 95년 지방선거때 재미있는 기소사건이 있었다.

서울의 모 선거구에서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이모씨가 당선됐다.

그는 선거구민에게 배포한 자료에서 모대학의 청강생출신인 자신의 학력을
대학졸업생으로 속였다고 제소됐다.

우리나라 선거 사상 처음으로 학력 허위표시로 당선후 기소된 사람이 됐다.

이러한 청강생과 다른 신종 청강생이 서울대학교에 등장할것 같다.

서울대 공대가 국제통화기금(IMF)여파로 실직한 사람을 대상으로 대학및
대학원 강의를 무료로 제공키로 하고 이번 1학기부터 청강생을 모집키로
했다.

시험을 치러 수료증까지 준다고 한다.

갈곳이 많지 않은 실직자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피터 드러커는 저서 "포스트자본주의사회"에서 지식사회의 도래를 예견하고
있다.

화이트칼라 출신의 실업자에게도 공학이외의 분야에서 청강기회가
마련됐으면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