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 < 시인 >

정축년 세밑, 엄동설한.

한 해가 끝내 저물고 있다.

춥다.

그립다.

아프다.

답답하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렇지만 그래도, 정말이지 그렇다 해도, 참아야 한다.

견디어 내야 한다.

막말로 쓰자면 사는 일이 별 것도 아닐진대 왜 이리 답답하고 화가 난단
말인가.

그것 자체가 참을 수 없이 화가 난다.

지금보다 더 못살았고, 지독하게 추웠고, 아팠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먼 시절의 일도 아니다.

그런데 그런 유년기의 기억을 떠올리면 아프지만, 그립지만, 추웠지만 왜
그리 따뜻하게 가슴이 저미어 오는지.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그 따뜻함을 여지없이 배반해버린 차가움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때 나는 한권의 책과 만났다.

손춘익 장편소설 "추억 가까이"가 나에게 위안을 안겨주었다.

어둡고 차가운 가슴에 따뜻하고 밝은 불씨를 심었다.

손춘익 "추억 가까이"는 해방직후 동해안 바닷가 조그만 마을에서 자란
네살짜리 아이가 열두살 소년으로 성장하여 새로운 세계를 향해 출발하기
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유년의 보고서라 할 수 있다.

변두리 빈촌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작가는 소년의
눈을 통해 흑백사진을 찍듯이 찍어내고 있다.

여기에는 고향을 떠난 뿌리뽑힌 자들의 암울했던 절망적인 생활이 있고,
좌우대립의 핏발 선 눈길이 있다.

말단권력의 횡포에 의해 망가져버린 삶도 있다.

신체적 불구와 정신적 황폐화를 견디지 못하고 몰락해버린 처절한 통곡도
있다.

이렇듯 소설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은 지금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왜 따뜻한 가슴앓이로 단숨에 읽게 하는가.

작품의 진정한 미덕은 여기에 있다.

비록 암담한 현실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향상된 삶의 의욕을 가져다주는
적극적인 인간상을 작가는 창조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해방직후 우리 삶의 모습을 그 밑바닥에서부터 가감없이 묘사하면서 인간의
내면적 성장을 추억처럼 보여주기 때문이다.

소설의 맨끝처럼.

"열차는 미명 속을 힘차게 달려가기 시작한다.

나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다.

어둠이 내 시야를 가린다.

먼 마을의 불빛이 꿈결처럼 가물거리며 사라져간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