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0일 금융시장안정대책을 내놓은 것은 금융시장에서 신용질서가
붕괴되고 대기업들이 연쇄부도위기에 몰리는등 한국경제가 IMF(국제통화기금)
쇼크로 극한상태로 떨어지고 있는데 대한 불가피한 처방이다.

골자는 금융불안의 핵심인 종금사중 살릴 것과 정리할 것을 명확히 구분함
으로써 시장의 신뢰를 회복시키자는 것이다.

이번 조치로 종금업계의 대개편이 더욱 앞당겨지게 됐다.

또 단기자금차입에 의존했던 기업들은 자금조달패턴을 바꾸고 구조조정을
가속화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됐다.

정부가 지난 2일 9개 종금사에 이어 5개 종금사를 추가로 업무정지시킨
것은 종금사로부터의 예금인출이 급증하는 등 종금사의 신뢰도하락이 더이상
걷잡을수 없는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30개 종금사중 당초 방침대로 21개를 모두 지원하려다가는 전 금융권이
붕괴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대신 정상업무를 하게 되는 16개 종금사에 대해서만은 체신예금 등
공공법인이 자금을 예탁토록 하고 한은도 지원하도록 해서 살려 나가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종금사들이 금융시장의 후선으로 밀려나는 만큼 업계에서는 나머지
종금사들도 계열증권사나 은행등에 대한 합병의 길을 모색할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업무정지명령을 받은 종금사들중 상당수는 결국 정리의 길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결국 살릴 것으로 분류된 16개 종금사의 사활은 정부의 자금지원대책이
얼마나 유효하냐에 달려 있다.

종금사의 업무정지에 따른 기업들의 자금난은 은행신탁계정에 대한 CP
할인업무 허용으로 보완된다.

그러나 기업들로서도 단기자금의존도를 낮추고 본격적인 재무관리에
나서야만 하게 됐다.

앞으로는 경제발전의 견인차였던 차입에 의존한 투자방식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는 얘기다.

정부는 급한 불은 5조원의 한은특융으로 끄기로 했다.

종금사에 묶인 콜자금을 풀어주고 증권사에 대해서도 종금사를 통해 긴급
수혈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통화증발로 IMF가 제시한 통화관리목표를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

시장붕괴를 막기위해 어쩔수 없는 조치로 결국 IMF식 구조조정이 출발부터
허점을 드러낸 것으로 볼수 있다.

이번 대책은 또 자금긴축의 원천인 은행들에 대해서 자기자본비율을 맞출
수 있도록 확고하게 보장함으로써 시중자금경색을 푸는 방안도 제시했다.

연기금으로 하여금 후순위채를 매각하도록 하고 예금보험공사가 은행증자에
참여하는 직접적인 방법을 선택함으로써 은행들의 불안감은 상당부분 해소될
전망이다.

이에 필요한 자금은 예금보험공사와 성업공사의 채권발행으로 조달하기로
했다.

채권물량이 상당하겠지만 금융실명제를 보완하고 채권시장조기개방의
효과가 나타나면 소화가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정부도 보고 있다.

이번 대책은 정부로서는 할수있는 대책은 상당부분 내놓았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환율이 급등하고 주가가 폭락하는 등 시장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이날 조치로 정부는 지난 10월이후 열차례가 넘는 대책을 내놓은 셈이 됐다.

대책은 늘 미봉책에 그쳤고 불신만 증폭시켜 왔다.

이제 이번 조치로도 불충분한 부분은 대통령의 몫으로 남겨지게 됐다.

11일 대통령이 담화를 통해 어떤 특단의 대책을 내놓을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또한 정치권의 몫도 적지 않다.

해외에서는 대통령선거까지를 불안하게 보고 있으며 일부의 IMF 재협상
주장에도 불신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특히 대선직후 국회에서 금융개혁법률안과 금융실명법 국채발행동의안 등이
원활하게 처리되는 것도 긴요한 일이다.

정부의 행정력만으로 사태를 수습하기에는 한계에 왔다는 얘기다.

< 김성택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