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국가들의 금융위기가 먼 나라의 얘기로 들리던 때가 바로
엊그제였다.
그런데 막상 우리나라도 그 당사자가 되었다.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외국의 시각은 아시아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이다.
"아시아의 호랑이가 거지로(Asian tiger to asian beggar)"라는 모욕적인
표현까지 등장한다.
물론 아시아 경제위기가 일시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대표적으로 하버드대학 경제학과의 삭스 교수는 포린어페어스(Foreign
Affairs)지 최근호에서 "아시아 금융위기는 이들 국가의 노력으로 충분히
치유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외국이 어떻게 보느냐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우리의 관심이 집중돼야 한다.
과거와 현재에 얽매이기 보다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다시 시장을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경제위기는 이미 예견되었던 것이다.
사전예방이 소홀해서 결과적으로 문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새로운 경제운영의 틀이 요구되고 있다.
문제점에 대해서는 많은 지적들이 있지만 정부를 탓하거나, 경제학자의
예단력부족을 비난하거나, 기업의 잘못으로 몰아붙이기에 앞서 우리전체의
문제였다는 점을 다시한번 되새겨야 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중국에서 4년간 특파원으로 근무했었다.
중국을 우리나라와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만만디"로 알려진 중국도 국제화 세계화추세가 새로운 국제경제
질서로 잡아가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지도자들이 솔선하여 수년전부터 거대한 국가를 능동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94년부터 실시한 환율단일화와 관세율인하는 대표적인 예다.
특히 95년 35.9%이던 관세율을 2005년까지 10%로 인하한다는 목표로 추진
되는 관세인하정책은 매우 놀랄만 하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그것도 12억 인구에다 30만 국유기업의 이해가 첨예
하게 걸려있는 관세율인하를 10년내에 4분의1로 낮춘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닌 탓이다.
이같은 국제화 세계화와 함께 현지화도 적극 추진했다.
해외부문을 줄이고 본토의 경제비중을 높인다는 것.
중국의 대외 의존도는 94년 45%를 정점으로 매년 급격히 하락하여 지난해엔
35%로 낮아졌다.
조만간 20% 아래로 떨어질 전망이다.
그 결과 1천3백억달러 이상의 외환보유고를 자랑하면서 연 10%정도의
실질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이 길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IMF의 긴급수혈을 통해 연명하게 된 한국경제의 환부를 과감히 도려내고
새로운 탄생을 준비해야 할 때다.
IMF와의 협상이 굴욕적이라든지 하는 감상적인 태도는 이제 별 의미가
없다.
만약 실패한다면 "북한보다 나은게 무엇이냐"는 뼈아픈 질문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한나라 경제가 무너지는데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최근 이를 지켜봤다.
하지만 경제를 새로 일으키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우리는 지금 벼랑끝에 서있다.
IMF의 구제금융을 마지막 회생기회로 삼아야 한다.
과거 한세대간 이룩한 우리 경제는 충분히 회복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여러가지 원인으로 왜곡됐던 경제구조를 경제원리에 맞게 재조정해야 한다.
물론 우리의 많은 인구가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인력에 기반을 둔 경제구조를
가져야 한다.
네덜란드나 홍콩처럼 고도의 서비스산업이나 고기술에 바탕을 둔 벤처산업
에 당장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더이상 산업공동화니 하는 논리로 불필요하게 국내산업을 보호할 수는
없게 되었다.
이제 IMF의 구제금융을 받았다고 자괴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스스로 해야 할 일을 남의 도움으로 고치게 되었다는 아쉬움을 반추하면서
우리 모두 시장을 새로 살리는데 동참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