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들은 극성스럽다고 한다.

음악 미술 운동경기 등 많은 부문에서 국제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어떤 때는 남성들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극성이라는 말은 도가 지나치다는 나쁜 뜻도 있지만 몹시 왕성한
상태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면이 많다.

한국경제신문사 새사옥에서 열리고 있는 "피카소 미공개 작품전"의
관람객을 보면 새삼 한국의 여성시대를 절감하게 된다.

관람객들의 80%이상이 여성들이다.

남성들은 다 어디에 갔는가 의아해질 정도다.

주부들이 어린 자녀들을 안거나 업고 그림을 관람하는 경우가 많다.

남자로 치면 상당히 피곤하고 성가신 일일텐데 아무렇지 않게 어린
자녀들을 껴안고 전시장을 둘러보는 그 진지함에 극성스러움을 안느낄수
없다.

물론 남성들은 그 시간에 직장에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그림을 관람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볼수도 있다.

그러나 남녀가 다 함께 쉬는 일요일에도 관람객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에서는 할 말이 없다.

남성들은 살아가는 방도에 쫓기다보니 그림같은것 감상할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인지 생각되기도 한다.

대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남자대학생들은 드물고 여대생 천지다.

남자대학생들은 취업난으로 취직걱정에 여념이 없어 그림 볼 엄두가
안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취업의 바늘구멍은 여성들이 더한 편이라고 보면 거기에도 선뜻
수긍이 가지 않는다.

남성들은 그만큼 정서에 메마른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인지 싶기도 하다.

중고생에 이르러서도 같은 현상이다.

몇몇이 짝지어 오거나 단체입장객들도 대부분이 여학생들이다.

아직 취직걱정할 나이가 아닌 중고생까지 여학생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은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림공부하는 학생중엔 여학생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도 도대체 비율이
맞지 않는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의 관람객중엔 부부나 데이트하는 남녀대학생들도
있다.

전부는 아니지만 이들도 개중에는 여성들에게 떠밀려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21세기는 육체노동보다는 지적 감성적 문화적시대라고 한다.

한발 앞서 전시장에서 여성시대가 꽃피고 있는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