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과를 마치고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오면 때로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는다.

해남의 한 시골교회에서 50년동안 시무하신 아버지를 따라 사랑과 봉사의
삶을 꾸려오신 어머니, 팔순을 훌쩍 넘으셨건만 지금도 당신 자신보다
어려운 아이들과 노인들을 걱정하고 돌보느라 여념이 없다.

화내는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어머니는 늘 수줍게 미소만 지을 뿐
말씀이 없는 분이다.

전화로 한결같이 하시는 말씀은 "오늘도 참아 봤느냐" 한마디 뿐이다.

평생 힘든 삶 가운데서 체득하고 실천해오신 신념이시리라.

선뜻 "네"하고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며 오늘 다시 그
말씀의 뜻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참는다는 것은 단순히 화를 누르고 보아도 못본척, 싫어도 아닌척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며 그 마음을 이해하고 수용해
줄 수 있는 넉넉함이 아닐까.

언젠가 참는 것이 무엇이냐고 어머니께 여쭙자 "그냥 참아봐라"고만
하셨다.

일을 하면서 고객과의 만남에서나 직원들과의 관계에서, 또는 가족간에도
내 뜻대로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산다는 것은 참는 것을 배우는 과정인 것같다.

어머니께서는 내게 필요한 것이 오늘을 조용히 살고 내일을 태연하게
기다릴 수 있는 인내임을 미리 아셨나 보다.

어머니의 그 말씀이 이젠 삶의 뿌리가 되었고 언제부터인가 성프란체스코의
기도를 나 자신의 기도로 삼게 되었다.

"주님, 제가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을 위해서는 그것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평화로운 마음을
주옵소서.

또한 그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시길 기도드립니다"

멀고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뵙지도 못하는 어머니.

이제 얼마나 더 사실지 모르겠다.

오늘도 어머니의 말씀을 생각하며 가슴이 저며옴을 느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