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통해 인생을 만들어간다.

음악가가 작곡을 하고 조각가는 돌을 다듬듯이.

20년동안 옷을 만들면서 삶에 대한 자세와 의미를 배우고 삶의 미완성
부분을 채워나가고 있다.

옷 하나하나에 생각과 마음을 담아내기 위해 혼신을 다하고, 정성들여
다듬고 또 다듬어야 비로소 한벌의 옷이 만들어진다.

계절이 바뀌면 디자이너는 아기를 낳는 것과 같은 산고를 치른다.

그 계절에 걸맞는 모티브를 찾아내고 트렌드에 어울리는 작품을 창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모티브에는 디자이너의 생각과 철학이 녹아있어야 한다.

철학자 어거스틴은 사람들이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신비스럽게 생각할
줄은 알면서 자기 자신의 존재의 깊이를 들여다보고 놀랄 줄은 모른다고
했다.

세월이 훌쩍 뛰어 넘어버린 것 같은 올 가을, 머리 속에 불현듯 떠오른
생각은 스스로 원하는 나의 모습은 알아보려 하지도, 그려보지도 않은채
내가 바라는 남의 모습만 기대하지 않았나 하는 자성이다.

도대체 내가 진정으로 원하고 이루어야만 하는 나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나는 마음 깊은 곳에 웅크리고 숨어있던 소박하지만 찬란한 날개를 가진
마음의 새를 날려 보기로 하였다.

그래서 "은빛 날개를 달아요"라는 제목아래 작품 발표회를 가져보았다.

그런데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은 비단 나만은 아닌 것 같다.

"정치인은 이래야 한다, 기업가는 저래야 한다"며 남의 모습들은 잘
그려내면서 막상 자신은 어떤 모습인지, 또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자신은 변화하지 않은 채 남에게 바라는 모습만 그리다 보니 실망하기도
하고 부족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자신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깨달음이란 늘 뒤늦게 온다지만 지금부터라도 스스로 "원하는"모습이 되기
위해 진정으로 해야만 하는 내 몫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찾아 움츠렸던
날개를 조금씩 펴 나가야 할 것 같다.

서투른 날개짓이라 하더라도 시작이 중요하니까.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