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돈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경기침체로 자금이 필요하지만 신용추락으로 회사채나 기업어음(CP) 발행이
여의치 않다.

모자란 자금을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벌충해야 하지만 잇따른 부도여파로
금융기관들로부터 자금을 얻어쓰기 힘들어지고 있다.

이에따라 기업들이 부담하는 금융비용은 더욱 높아지고 있어 ''경기침체-
재고누증-자금수요증가-금융비용 부담증가-자금부족액 증가''의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는 곧바로 연쇄부도위기로 연결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기업들의 돈가뭄은 우선 운전자금수요의 급증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지난 6월말 현재 예금은행의 기업에 대한 운전자금대출잔액은
1백12조2천9백5억원으로 작년말(99조4천7백1억원)보다 12조8천2백4억원이
증가했다.

이는 경기침체로 운전자금수요가 극심했던 작년 한햇동안의 운전자금대출액
13조4천1백48억원과 맞먹는 규모다.

기업들이 6개월새 10조원이상을 운전자금으로 빌려간 것은 사상처음이다.

올들어 재고증가율이 어느 정도 둔화되고 있는데도 극심한 재고누증으로
운전자금수요가 폭증했던 작년 같은기간 보다 더 많은 운전자금을 기업들이
빌려 썼다는 것은 기업들의 자금사정이 그만큼 어렵다는걸 증명한다.

이에비해 기업들의 시설자금대출액은 지난 상반기중 6천3백30억원에 불과,
작년 한햇동안의 시설자금증가액(2조5천4백91억원)이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기업들은 또 종금사 보험사등 제2금융기관으로부터도 14조6천4백30억원을
빌려 썼다.

제2금융권 자금 대부분이 운전자금인 점을 감안하면 기업들이 현상유지를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퍼부었는지를 알수 있다.

그러나 금융기관으로부터의 대출이 녹녹한것만은 아니다.

연쇄부도여파와 종금사등의 수신감소로 최근 금융기관들은 기업여신을
최소화하고 있다.

행여 돈을 빌려주더라도 충분한 담보와 보증을 요구, 담보가 바닥난
기업들은 금융기관을 찾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미 한도가 설정된 당좌대출을 쓰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은행들의 당좌대출금리는 지난8일부터 14일까지 연 17.1%를 기록하고 있다.

연 13%대인 평소에 비하면 4.0%포인트가량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도 당좌대출잔액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난 13일 현재 7대 시중은행의 당좌대출잔액은 6조2천5백85억원으로
당좌대출한도의 30.5%에 달하고 있다.

평소 당좌대출소진율이 25%대에 그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아주 이례적인
현상이다.

그렇다고 자기신용을 바탕으로한 직접금융이 수월한 것도 아니다.

지난 상반기동안 기업들은 회사채나 CP발행등 직접금융을 통해
19조1천6백10억원을 조달했다.

이는 작년 상반기의 29조3천7백50억원보다 10조원가량 줄어든 것이다.

전체 자금조달에서 직접금융이 차지하는 비중도 작년상반기 51.3%에서
지난 상반기에는 11.8%로 급락했다.

특히 CP발행은 지난 2 4분기중 3조9천4백90억원이 감소, 기업들이 단기
운전자금을 충당하는데 얼마나 애를 먹고 있는지를 반영하고 있다.

은행관계자들은 경기침체기에는 운전자금동원능력이 얼마나 되느냐가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게 된다며 최근 대기업의 연쇄부도가 잇따르고 있는
것도 결국은 운전자금동원능력이 약해진 탓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기업들의 부도가 이어질수록 금융기관들은 몸을 사릴수밖에 없어
연말까지는 기업들이 극심한 돈가뭄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했다.

< 하영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