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호 <서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우리나라의 자동차시장 개방문제를 놓고 한국과 주요 선진국들간에
통상마찰이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통상법 슈퍼 301조를 적용하여 한국을 우선협상관행 국가로
지정한데 이어 유럽연합도 WTO(세계무역기구)에 이 문제를 제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언론의 보도가 나오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한국의 자동차시장이 개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산
자동차의 국내판매가 지나치게 저조하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이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외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인하와 과도하게 누진적이라고
생각하는 자동차 관련 국내 조세제도의 개편 등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통상압력에 대해 우리 정부는 물론 온 국민이 이를
부당하다고 생각하고있다.

한국정부는 미국이 일방적인 보복조치를 취할 경우 이에 맞대응하는
한편 미국의 조치를 WTO에 제소한다는 입장이며 일부 시민단체는 미국 상품
불매운동을 전개하겠다고 고조된 감정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WTO라는 다자간 무역체제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 미국이 일방적
조치인 슈퍼 301조를 발동한 것과, 입법사항의 하나인 관세와 조세제도의
개편을 약속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여기서 이러한 접근방법상의 부당함을 떠나 우리 자동차시장에
대해 한번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중에서도 외국산 자동차의 시장점유율이 1%미만이라는 사실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자.

외국산(특히 미국산)자동차는 대형일뿐 아니라 부품값이 비싸고 애프터
서비스가 취약하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은 당연하다는게 정부와
업계의 해석이다.

또한 한국의 자동차에 대한 관세율(8%)이 국제수준(미국과 유럽연합의
경우 각각 2.5%와 10%)에 비추어 그리 높지 않고 자동차관련 세금은
내국민대우 원칙에 따라 부과하고 있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만으로는 1%미만의 시장점유율을 설명하기에는
설득력이 없는것 같다.

즉 경쟁력있는 중소형 외제 자동차들의 수입이 왜 이토록 저조한가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남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 일부에서는 국제경쟁력이 높은 중소형 일본차가
수입선다변화정책에 묶여 수입될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대답도 충분치 않은것 같다.

최근 유럽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국제경쟁력을 갖춘 여러 유형의 새로운
중소형 자동차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자동차의 경우 다양한 소비자의
기호로 인해 산업내 무역(intra-industry trade)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볼때 1%미만의 시장점유율에는 또 다른 이유들이 있을
것 같다.

필자는 그 이유의 하나로 우리의 수입자유화정책이 생산자보호 위주로
운용되어 왔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즉 정부는 시장개방시 소수의 수입권만을 허용함으로써 국내 생산자를
수입제품과의 경쟁으로부터 보호해 주었다.

자동차 수입이 저조한 또 하나의 이유는 국내 판매망 구축에 드는 비용이
커 외국산 자동차의 다량 수입 판매가 용이치 않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수입업체들은 국내에서 경쟁이 치열한 중소형 자동차보다는
오히려 경쟁이 수월하고 대당 프리미엄이 큰 고가의 대형모델을 수입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는 이윤마진이 적은 중소형 자동차의 수입이
적을 수밖에 없게 되며 자동차시장은 자연히 독과점적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이다.

자동차시장의 독과점적 시장구조는 국내 기업을 외국산 자동차와의
경쟁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경제에 어떤 결과를 가져다 주는가.

최근 국내 자동차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것이 외제 자동차의 수입이
늘어서 야기된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오히려 보호된 국내시장에서 얻은 초과이윤을 생산성 제고보다는 생산규모
확장과 다른 분야로의 사업다각화에 과다하게 투입한데서 이러한 어려움이
온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번 기회에 우리 자동차시장에 외국으로부터의 경쟁이 실질적으로 들어올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나가도록 해야 하겠다.

이는 결코 미국의 통상압력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동차산업을 보다
경쟁력있게 만들고 그 혜택이 바로 우리기업과 소비자에게 돌아갈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자동차산업은 우리나라의 핵심 전략산업의 하나다.

미국과의 협상과는 별개로 우리 자동차산업과 관련된 모든 문제점들을
객관적으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최근 정부가 자동차 관련 국내 세제의 개편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통상마찰 해소차원이 아닌 OECD 회원국으로서 자동차산업과 조세제도의
선진화작업으로 보아야 할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