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헌 < 삼성생명 부사장 >

지난 9월28일 동경에서는 프랑스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놓고 한일전이
벌어졌다.

양국민의 열화와 같은 성원속에 열린 경기는 2대1 우리나라의 승리로
끝이났고, 덕분에 우리나라는 오랜만에 전 국민이 하나가 되어 승리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한국이 죽어도 일본을 못따라 잡는 18가지 이유"는 한 일본인이 한국에
대한 자신의 체험과 생각을 정리해 양국관계의 한단계 높은 발전에 보탬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에서 쓴 책이다.

작가 모모세 타다시는 현 종합상사 도멘의 서울지점장으로 우리나라에서만
28년의 주재경력을 가진 이른바 "민간 한국통"이다.

작가는 한국인의 일본인에 대한 선입견을 의식한 탓인지 본인을
"한국사람이 되고 싶은 일본인"으로 소개하면서 자신의 제안이 진심으로
한국을 걱정하고 아끼는 사람의 그것으로 이해되기를 바라는 듯 하다.

그의 제안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제3자가 가질수 있는 색다른
시각이다.

이젠 우리나라도 국내에서, 같은 업종의 회사끼리 경쟁하는 대신
아시아의 리더로서 아시아의 공존공영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나,
역사와 규모에서 열세인 한국의 종합상사들이 일본과 똑같은 스타일로
경쟁하는 대신 몇개 회사를 합쳐서 경쟁력있는 부분을 육성해야 한다는 것,
오로지 일본만을 추격하는 사이 부쩍 성장한 동남아 국가들에 대한 견제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 특수기술을 가진 일본 중소기업들을 국내 업체와
연계.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하자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 다음에 열거된 이미 우리도
주지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지적이다.

한보와 대농 등 대기업 부도의 원인인 비경제적.비합리적 경영,
선진국에서 도입한 기술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을 보탤수 있는 연구를
가능케하는 합리적 지원 체계의 미흡,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망하지
않는 "기업풍토, 입사한지 4.5년만에 회사를 옮기는 이직풍토 등이
그것이다.

이상의 것들은 우리가 "일본만 죽어도"따라잡기 위해서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점임에 틀림없을 뿐 아니라 진정 우리가 이기고자 하는 것이
"축구"만이 아니고, "일본"만이 아니라면 한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그 안에 묻혀서 그 위험성을 인식하는데 무뎌진 우리들에게 주는
한 성실한 일본 상사맨의 충고는 그래서 평이하지만 따갑기 그지 없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