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클레이즈은행마저 무너지다니..."

영국의 대표적인 은행인 바클레이즈은행이 지난 4일 국제증권업무
(investment banking)를 포기한다고 공식 발표한데 대한 현지 금융전문가들
의 탄식조적인 반응이었다.

영국의 마지막 보루였던 바클레이즈은행이 이날 금융증권전문 자회사인
BZW를 매각키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금융대국으로 자처하고 있는 영국은 국제금융 증권업무에서 "백기"
를 든 것이다.

지난 6월에는 네트웨스트(New West)은행의 금융증권 자회사인 NWM사가 옵션
거래를 잘못하는 바람에 7천7백만파운드(1억2천만달러)를 날려, 풍지박살이
난 상태다.

현재 구조조정작업이 진행중이지만 재기는 불가능하다는게 일반적인 관측
이다.

바클레이즈은행의 "항복선언"은 사실 영국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국제금융 증권업무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서유럽의
내로라하는 은행들은 저마다 수십억달러를 투자, 90년대초부터 인베스트먼트
뱅킹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미국과의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더 벌어져 왔다.

바클레이즈의 사례는 국제금융 증권업무의 패권을 둘러싼 미국 서유럽간
경쟁에서 서유럽계은행들의 "완패"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라는게
일반적인 평가다.

미국이 그동안의 "상대적 우위"에서 이제는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독주
시대"를 예고한다는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서유럽은행들은 미국시장 진출은 커녕 자국시장 방어마저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영국은 금융 증권업무를 수행하던 10개사 가운데 8개사가 지난 90년대
중반 외국계은행에 흡수합병된데 이어 올해 네트웨스트와 바클레이즈은행마저
무너졌다.

독일도 상황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대표적 은행인 도이체방크와 드레스너방크가 인베스트먼트뱅킹에 참여하고
있지만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등 미국의 증권사들이 독일시장을
안방처럼 휘어잡고 있다.

지난 상반기중 독일에서 일어난 M&A 중개업무의 66%(매출기준)를 미국계
증권사들이 먹어치웠다.

메릴린치사의 지난해 자본수익률은 28%.

이에반해 도이체방크의 증권계열사인 모건그렌펠사의 자본수익률은 3분의
1에도 못미치는 9%에 불과했다.

인베스트먼트 뱅킹시장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점유율은 지난 90년 41%에서
지난해는 62%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동안 랭킹 10윙안에 드는 미국계 증권사는 5개사에서 8개사로
늘어났다.

미국이 국제금융 증권업무를 독차지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인 셈이다.

서유럽계은행들이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요인은 여러가지다.

우선은 시장자체가 상대적으로 열세다.

미국의 주식시장은 일본 영국 독일시장을 합한 것보다 크다.

미국의 채권시장규모는 전세계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증권인수에 따른 수수료도 미국이 5~7%로 비교적 높은 편인데 비해 서유럽
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증권사들은 경영권을 독자적으로 수행하고 있어 대주주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반면 유럽계는 대주주들로부터 시시콜콜한 문제까지
경영간섭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백기"를 든 서유럽계 은행들의 앞날은 큰 자금을 주무르고 이윤도 많이
챙길수 있는 "빅 비즈니스"를 잃었으니 비참한 신세를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자국시장에서 그것도 전통적인 시중은행업무만 수행하는 틈새시장(niche
market)에 안주할 수 밖에 없게 됐다.

은행업무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세계시장의 주도권싸움에서 패하면
로컬 메이커(local maker)로서 만족해야 하는 것이다.

< 런던=이성구 특파원 >

[[[ ''인베스트먼트뱅킹'' 이란 ]]]

인베스트먼트뱅킹은 증권의 매매 인수 중개는 물론이고 국제금융시장에서
대규모 차관단을 구성, 기업에 자금을 공급해 주는 업무이다.

그러나 최근들어서는 기업의 인수합병(M&A)에 중개역활을 하고 기업의
구조개편에 대한 자문도 해 주는 등 그 기능이 날로 확대되고 있다.

투자수익이 큰 만큼 리스크도 높아 주머니가 두둑해야 살아남는 분야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9일자).